좀이 쑤셔서 못 견뎌!
월요일 아침의 공기는 유난히 다르게 느껴졌다. 마을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지만, 학교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설 때에는 온몸이 괜스레 엇박으로 움직이고, 마음은 먼저 쪼그라드는 듯했다. 전교생이 8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학교였지만, 월요일 조회만큼은 큰 학교처럼 '제식 훈련'의 냄새가 풍겼다.
1교시 시작 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운동장으로 줄줄이 걸어 나왔다. 선생님들도 운동장 뒤편에 줄 맞춰 서 있었고, 평소엔 수위실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수위아저씨까지도 조회 시간만 되면 꼭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학년별로 두 줄씩 나란히 서 있으면, 먼저 한 주 동안 있었던 각종 대회 시상이 있었다. 운동회, 글짓기, 사생대회..등등 별의별 상장을 다 줬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앞으로 있을 행사 공지. 아이들에겐 그저 지루함의 연속이었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아이들에겐 '지루함의 정점'이자 '고문 시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장기전이었다.
그 시간은 길면 30분, 짧아도 20분은 기본이었다. 우리는 바지 봉제선 위에 주먹을 올려놓고 꼿꼿하게 서 있어야 했다. 고개가 살짝만 숙여져도 뒤에서 선생님 발소리가 스윽 다가와 "앞에 봐라"라는 한마디가 떨어졌다.
웃기지도 않게 조회 시간만 되면 온몸이 근질근질해지고, 발바닥이 간지럽고, 뭔가 괜히 움직이고 싶어졌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어린애들한테는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조금만 방심하면 호되게 혼났다.
그중에서도 꼭 한 번씩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아이들. 얘네들이 늘 문제였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킥킥거리며 장난을 치는 거다. 서로 팔꿈치로 쿡쿡 찌르고, 발끝으로 운동장 흙을 슥슥 긁어 먼지를 날리고, 모래로 소리 없는 장난을 치다가 결국 교장선생님의 시선이 그쪽으로 꽂혔다. 그 순간의 공기 변화는 정말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교장선생님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굳히고, 조회 대열로 내려오면 아이들은 이미 표정이 허옇게 굳어 있었다. 결국 그 아이들은 구령대 앞으로 끌려갔다. 그리고는 교장선생님 뒤에 세워진 채로 조회 시간 동안 국민체조를 했다. 팔 올렸다 내렸다, 제자리뛰기, 옆으로 벌렸다 모았다. 우리 앞에선 교장선생님의 느릿한 훈화말이 이어지고 있고, 그 뒤에선 작은 신음소리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보면서도 웃으면 안 됐다. 웃다가 걸리면 그 다음 차례가 내가 될 수 있었으니까. (ㅠㅠㅠㅠㅠㅠ)
나는 모범생 축이어서 크게 잡힌 적은 없었지만, 선생님 발소리가 내 등 뒤로 다가오면 저절로 숨이 턱 막히고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특히 여름엔 아이들이 픽픽 쓰러지고는 했다. 앞에서 한 명, 뒤에서 한 명. 운동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면 선생님들이 곧바로 달려와 안아갔다. 보건실이 없던 시골학교였으니 결국 수돗가 찬물로 얼굴을 씻기고, 뺨을 탁탁 두드려 깨우곤 했다. 이런 상황들이 매주 월요일마다 반복됐다.
지각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회에 늦어서 운동장 앞을 가로질러 들어가는 그 수치스러움은 말도 못 한다. 전교생의 시선이 온몸에 박히는 느낌. 그래서 월요일만큼은 비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누구도 지각하지 않았다.
흐린 날엔 속으로 다들 그렇게 기도했다.
"비 내려라.. 제발 비 좀 내려라.. 아니 쏟아져라!!"
하지만 기적처럼 비가 오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가끔 상을 받는 날이면 조회가 조금은 기다려지는 듯했다가도, 막상 구령대 위로 올라서야 한다는 걸 떠올리면 부담스러움이 턱 밑까지 차고 올라왔다. 상장을 받는 연습까지 시키고, 내려오는 각도까지 잡아주시던 그 형식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다들 숨을 죽였다.
한 번은 '조상들에 얽힌 일화' 글짓기 상을 받았는데, 상장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을 마이크로 읽어야 했다. 전교생 앞에서.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그날은 상을 받은 날이 아니라, 나에게는 마치 '사형 선고 집행일'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운동장 조회를 다시 한다고 하면 아마 바로 수시로 민원이 들어갈 거다.
"애들을 왜 햇볕에 세워둬요?"
"몇십 분을 서 있으라고요?"
"국민체조를 벌로 시켰다고요?"
이런 말이 바로 나올 거고, 뉴스 한 줄에 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그냥 '학교란 그런 곳'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모두가 그러니까.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그 모든 시골학교의 풍경, 교실 냄새, 친구들 목소리, 종 소리... 다 좋다.
그런데 월요일 조회만큼은,
정말...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