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비스듬히 내린다. 긴 줄에 나란히 양말을 널어 말리면, 마당 한 켠의 빨랫줄에 꽃이 핀 것 같다. 켤레마다 집게를 꽂아서 장난기 많은 바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채비를 한다. 하늘을 향해 장대를 곧추세워 두면, 줄에 걸린 꽃들 사이를 들락거리는 아기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손을 잡고 달리다가 손을 놓고 뛰어가기를 거듭하며 논다. 놀이하던 바람이 가위바위보를 하고 양말 한 짝을 슬쩍 걷어간다. 누렁이가 달려가서 날아가는 양말을 낚아채 온다. 노는 볕이 아까워서 종일 말린다.
낮 동안 바삭해진 양말을 색 맞추어 개킨다. 식구들 발을 상상하며 가지런히 발끼리 모은다.
양말 장을 열면 그 안에 옅은 볕의 향을 내는 늦가을의 해가 있다. 옷을 입을 때 양말의 색상을 맞춰서 신는다. 옷과 양말이 적당한 컬러감으로 조화로운 날, 맞춤하게 어울리는 양말을 신은 날은 발걸음이 가볍다.
가끔 짝짝이 양말을 신는다. 색이 다르거나 모양이 다른 양말을 신어 본다. 우연에 기대어 행복한 하루를 소망하곤 한다.
짝이 다른 양말을 신은 날은 대개 울적하거나 쓸쓸한 날이다. 이럴 때 내 양말을 유심히 보고 다름을 알아채는 누군가와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예전의 양말은 왜 그리 구멍이 잘 났는지. 교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바닥은 새까맣고 양말은 송송 구멍이 뚫렸다. 얌전하고 말이 없던 미순이는 늘 낡은 양말을 기워서 신고 왔다. 바닥의 작은 구멍은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앞 발가락과 바닥의 경계면이 뜯기면 앞 발바닥 전체를 꿰매야 했다.
청소 시간에 유인물을 가지러 교무실 복도에 나란히 서 있었다. 미순이가 왼발로 오른발을 살짝 가렸다. 오른발 발바닥에 두껍게 배접 된 천과 양말이 한 땀 한 땀 단정하게 채워졌다. 뒷짐을 지고 복도에 선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난 슬쩍 오른발을 감추던 그 아이의 미소를 기억한다. 그날 그 아이의 양말이 짝짝 이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서글픈 날은 아무 양말이나 신어 본다. 친구의 구멍 난 양말을 대신 메워주던, 그 촘촘하던 바느질 스티치를 기억한다. 내 서랍 속엔 바느질된 양말이 많다. 간단한 꽃 수를 놓으면 밋밋한 양말은 한결 생기가 돈다.
왼발 오른발 서로 다른 무늬를 수놓아 짝짝이를 만든다. 그럴 때면 나는 할머니 곁에 있는 듯하다. 침을 발라 바늘귀를 꿰고, 침침한 눈을 달래 가며 양말을 꿰매던 그 시절에 가 있다. 발가락 선을 따라 촘촘히 이어진 바느질 자국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짝이 다른 한 쌍을 만든다.
이제는 건조기에 넣어서 양말을 말린다. 기계에서 한숨 자고 나온 양말들은 절도 있는 기백이 없다. 졸음에 겨운 듯, 나른하다. 작게 쪼그라들어 한결 보드라워졌으나, 그 속엔 더 이상 햇살의 냄새가 없다. 볕이 따사로운 오후가 되면 줄을 지어 말리던 가족들의 양말이 생각난다. 땀땀이 바느질된 낡은 양말이 떠오른다. 이제는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은 그 곤궁한 시절, 오른발을 감추던 친구의 왼발이 아른거린다. 내일은 일부러 짝짝이 양말을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하수구리달인님께 빌려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