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을 조이고 아침 속으로 나선다. 흐린 날에는 가끔 진흙 속에 신발이 갇힌다. 고슬고슬한 흙의 알갱이를 찾아 징검다리처럼 건너간다. 땅이 간밤의 비를 가두었다. 빗물에 풀어진 흙덩이가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서 찰랑거린다.
고인 물의 가장자리에 서서, 표면을 지나가는 짙은 구름 덩이와 흐름을 감지한 고양이를 만난다. 장화를 신지 않은 고양이는 제 몸을 튕겨서 팔짝 튀어 오른다. 좌우를 감시하는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여유롭게 꼬리를 살랑거린다. 그 느긋함과 여유가 좋아서 아침 달리기는 럭키다.
흐리고 눅눅해진 땅 위로 두 발을 딛고 갈 때, 흙 속으로 끌어들이는 땅의 질척거림과 땅을 벗어나려는 안간힘 사이에서, 나는 쩔쩔매고 있다. 깨끗하게 세탁된 운동화가 진흙 속에 빠질 때는 눅진한 콧물에 빠진 기분이 든다. 질은 땅을 박차는 다리의 힘은 운동화에 엉겨 붙은 흙반죽에 저지당하고 사방으로 흙덩이를 튀긴다. 지나온 힘의 크기만큼 질퍽대는 대지에 선명한 자국이 남았고, 건너온 자국마다 내 몸의 중력이 고여 있었다.
그 힘은 발자국이 새긴 족문이다. 패인 홈의 무늬마다 벌써 와버린 계절의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다가올 계절의 꽃이 피어난다. 굳어진 땅은 소심한 발자국을 영구 보존하지 못한다.
마른땅을 밟으며 나아갈 때, 풍경은 기대보다 먼저 목적지에 이른다. 몸이 당도하지 못한 곳까지 시선을 데려간다. 몸과 마음은 하나 되지 않고 제각각의 빠르기로 이끌린다.
먼저 불려 간 심상은 운동화를 끌고 오는 뒤처진 육신을 기다린다. 몸이 현실을 살고 마음이 다른 시간·공간을 헤매는 순간의 어긋난 세계가 있다. 목적지의 공터에는 바람을 타고 노는 운동기구가 삐걱대고 있다. 바람은 숨을 이어주려고 대기하는 응급의처럼, 숨찬 나를 진정시킨다.
모자를 눌러쓴 여자와 핫팬츠 차림으로 뛰는 남자,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를 흘리는 노부부의 아침이 평화롭다.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마음을 모두 모아, 큰 솥에 넣고 천천히 저어가며 끓여버리고 싶다. 끓이고 또 끓이면 그들 안의 고민과 아픔들이 곰국처럼 진하게 빠져나와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걷고 뛰는 순간의 이 풍경은 스냅사진 속의 바람과 같아서, 휙휙 거리며 지나갔다.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을 내쉬면, 육신의 안쪽에서 비상하는 새 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색쌕거리는 아기새의 숨찬 말부터 성대가 굵어진 고음의 까마귀 소리까지. 무리 지어 섭생하는 짐승들의 날 것 같은 숨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온다. 허파꽈리가 뿜어내는 거친 것과 초록의 신선한 것이 순식간에 맞교환되면서 호흡을 고르게 한다.
카메라의 "찰칵”하는 소리마다 찰나의 시간이 저장되고, 일상의 파편들이 하나로 엮여 ‘지나갔던 순간’으로 되돌아온다.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산 것들의 열망이 연속동작으로 시공 안에 기록된다. 수천 장의 스냅사진을 이어 붙이면, 그것은 변해가는 계절의 빛을 이은 파노라마처럼 정지된 시간에 활력을 준다.
흐린 날에 걷고 뛰다 보면,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고양이가 뒤바뀌는 것을 감지한다. 느긋하고 음험한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눈에 맺힌 또 한 마리의 고양이를 보게 된다. 운동화를 신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삼색 고양이가 망막에 고여있다. 계절을 건너다 막 족문을 남기고 달려온, 얼룩덜룩한 고양이가 갇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