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다. 어젯밤부터 침범한 어둠은 아침이 되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동이 트는 게 분명한 것은, 잦아진 바퀴의 소음과 소음을 빗겨 들려오는 새소리 덕분이다. 암호를 잊은 요원처럼 멍하니 서 있다. 나는 시간 너머의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으로, 지상을 걷는 자들에게 폭탄을 던진다. 나의 탄약에는 고르게 섞인 '시'가 가득해서 폭파 후의 일을 상상할 수 있다.
나의 시는 폭발하지만, 그 순간 음악이 되어 천상의 소리로 분해된다. 다정하게 걷는 노부부의 말소리가 귀에 닿는다. 공을 차는 아이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처럼, 들리지 않던 사소한 것이 당신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폭죽처럼 소리가 퍼져나간다. 그 메아리는 행인들을 감싸고 서서, 기억 한 모퉁이를 접고 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의 페이지를 살짝 접어 둘 때처럼.
가끔 파편의 열기로 주변에 불이 옮겨붙는다. 대개 젊은 남녀 사이에 터진 '연애 시' 때문이다. 어쩌다가 대상들을 명중시키는 순간은 어금니가 저리도록 전율이 뻗친다.
그들에게 낯선 호감은 연못 가운데 핀 수련처럼 저만치 있는 것이라서, 쉬이 말을 걸기가 어렵다. 이런 순간이면 나는 요원의 맹세를 저버리고 슬며시 다가가, 우연처럼 인연을 맺어주고 싶다.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터져서 그 빛깔만큼 물들게 하고 싶어진다.
가장 멋진 일은, 폭발 순간 강력한 충격파가 고루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파장은 와이파이처럼 가로수 아래서도, 상점에서 들려오는 음악 속에서도 모두에게 공유된다.
가을날 갑자기 떠나고 싶어 지거나, ‘불현듯’이라는 표현을 빌리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나는 누군가가 간절해지고, 평범한 음식 속에서 오래전 기억을 떠올릴 때는 '추억 시'가 터지는 순간이라 여겨주길.
치명적인 그리움이나 순간적인 아픔이 밀려올 때, 멍멍해진 가슴으로 마냥 걷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안심하길. 내가 던진 시의 화약에는 화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절단되지 않을 것이며, 관통상 같은 외상으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뒷걸음질 치던 순간의 당신을 잡아주고 살며시 감싸주는 따스한 시이기에.
통증 대신 바스라져 남은 기억들이 당신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회상이라는 이름으로 아련하게 잔파도가 밀려들 수 있음을 기억하면 된다. 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질 때까지도 맴도는 이름이 있다면, 그건 상대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의 파동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공의 통로를 타고 와서, 그리운 사람이 잠시 만나고 간 것이라 여기면 된다. 그런 날은 밤이 길 것이다.
해가 뜨지 않는 아침에, 나는 시의 효용과 기억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 깊이 말고 너무 얕게 말고, 딱 적당하다 싶을 만큼만. 느리게 숨을 쉬고 천천히 눈을 감고,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그 어떤 통역사도 필요치 않다.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각자의 호흡만큼 몸을 부풀려서, 몸과 마음에 공기 샤워를 하면 된다. 기억은 삶에 내려앉은 게 아니라, 피부에 박힌 주근깨처럼 속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배어나는 것임을 안다. 태워도 지워도 어김없이 간질간질하게 피어난다. 이런 기억의 부스러기가 많은 사람은 시의 공기 속에 머무는 사람이다.
소름 돋도록 즐거웠던 순간도 망각의 강에 던져버리자. 평범한 하루가 지루하고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날에는, 터벅터벅 걸어서라도 책방에 가자. 가서 밍밍한 하루가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불러오고, 상실의 마음을 달래주는 책의 공기를 느끼자. 쓰러져 잠이 들더라도 영혼을 건드리는 시 한 편 읽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