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방 하나가 만든 기적

-외출할 때면 꼭 챙기는 것

by 이채이



“엄마, 오늘은 무슨 책이야?”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아이는 늘 물었다. 우리 집에는 특별한 ‘외출 가방’이 있었다. 재난을 대비해 준비하는 생존 가방처럼, 우리 가족에게는 ‘슬기로운 자투리 시간 키트’였다. 가방에는 동화책 몇 권, 색연필과 스케치북, 색종이와 풀, 작은 가위와 테이프 커터기까지 들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지루하고 낭비이자 고역이며, 그저 버려지는 시간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달랐다. 조각난 천을 한 땀 한 땀 이어서 근사한 조각보를 만들 듯, 우리는 자투리 같은 시간을 소중하게 꿰매며 지냈다.


아침이면 어린이집 차량을 기다렸다. 차량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늘 어정쩡한 5분, 혹은 10분의 공백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시간에 “심심해”를 외쳤고, 부모들은 조용히 게임기를 건넸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조용하고,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명심했다.

“시간은 조각조각 흘러가지만, 낭비된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자투리 시간은 의도적으로 준비하고 설계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임을 알아챘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볼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시작된 짧은 5분의 독서는 언제나 아쉬움을 남겼고, 그 감질나는 여운은 집에 돌아와 책에 더 깊이 몰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자투리 시간마다 책을 가까이한 덕분에, 아이는 자연스레 책을 펴게 되었다.


식당에서도, 병원 대기실에서도, 우리는 늘 외출 가방과 함께였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보물창고 같은 가방을 열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로 꽃을 접었다. 그 시간은 창의력과 집중력이 깃드는 놀라운 성장의 시간이 되었다. 때론 옆자리 아이와 친구가 되기도 했고, 엄마가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기만의 만들기에 몰두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눈빛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엄마, 나 이거 혼자 만들었어요!”

아이의 눈빛은 승리를 얻은 듯 반짝였다.


그 가방 하나로, 우리는 하루에 두 권 넘게 책을 읽었다. 한 달이면 60권, 1년이면 700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버려지는 시간 속에서, 이야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아이의 마음속에는 매 순간 새로운 상상이 꿈틀거렸다. 아이의 내면은 마치 7년 동안 땅속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린 대나무 같았다.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긴 시간을 오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 성장에 쓴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는 순간, 단 며칠 만에 수십 미터를 자라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우리 아이의 성장도 그랬다. 남들이 놓쳐버린 시간에 읽고, 느끼고, 상상했던 이야기들이 어느새 삶의 큰 뿌리가 되어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사소한 반복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이런 순간들이 결국,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게임기를 쥐어 주는 대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게 하고, 스크린 속 자극 대신 상상의 그림을 그리게 하는 일. 심심함 대신 상상력으로 내면을 채우는 일. 바로 그것이 ‘외출 가방’이 아이에게 준 값진 것이었다.


우리가 짬 날 때마다 재미있게 놀았던 사소한 습관이, 시간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를 견고하게 할 거라는 믿음. 나는 그 믿음을 오래도록 품었고, 지금,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노란 승합차를 기다리며 함께 책을 읽던 아이는 이제 의대생이 되었다. 여전히 식사가 나오기 전에는 책을 펴고,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야구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경험한 시간의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 무심하게 쌓은 그 습관이, 아이를 주체적인 삶으로 이끌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감히 제안드리고 싶다. 소풍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듯, 아이와의 외출에도 그런 마음을 담아 가방을 꾸려보자. 책 한 권, 작은 스케치북, 몇 장의 색종이. 언제든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소해 보이는 엄마의 준비가 아이의 하루를 바꾸고,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틈새 시간을 창작의 시간으로 즐기고 있다면, 아이는 이미 창조적인 존재로 변모하는 중이다. 그 변화를 기쁘게 지켜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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