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의 가치를 일깨운 가정 아르바이트

by 이채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또래 친구들이 가진 물건에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없는 물건을 남들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탐이 나는 것 같았다. 똑같은 걸 갖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흔들린다. 사줘야 할까, 참아야 할까. 자꾸 사주면 버릇이 나빠질까 걱정되고, 그렇다고 안 사주자니 아이 마음이 다칠까 마음이 무겁다.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2만 원이 넘는 물건은 아이가 직접 '집안 아르바이트'로 마련하게 한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돈의 가치를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다마고치를 갖고 싶다고 했다. 달걀만 한 크기의 장난감으로, 알을 보살펴 어른 닭이 되도록 시간 맞춰 먹이를 주는 전자 장치였다. 다음엔 반짝이는 요술봉을 갖고 싶어 했다. 아이의 소유욕은 끝이 없었다. 남들이 가진 물건은 하나같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 마음은 곧 “나도 꼭 가져야겠다”는 간절한 욕구로 이어졌다.


매일 식사 준비를 돕는 일, 신발 정리하기, 엄마 마사지 해 드리기 등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고르게 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쿠폰으로 정해줬다. 쿠폰 북을 만들어 하나하나 모으는 과정을 시작하자 아이는 놀라운 속도로 일을 해냈다.


가장 인기 있던 아르바이트는 단연코 ‘엄마 어깨 마사지’였다. 딸아이의 작고 따뜻한 손이 내 어깨에 닿자,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열 번의 마사지를 다 채울 즈음,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나 진짜 이걸 사야 할까요? 돈 벌기가 힘들어요.”

그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그건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것'과 '애써 얻은 돈' 사이에서 스스로 고민한 순간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하려는 삶’이 우리 안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고 결국 불안과 집착을 키운다고 했다. 반면 ‘존재하는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아이는 아마도 아주 어린 나이에, 그 두 삶의 차이를 직감했던 것 아닐까.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결국 그 물건을 사지 않았다. 손에 돈을 쥐고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갖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선택적 소비 더 나아가 '가치 있는 소비'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돈을 쓰는 사람은 먼저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아이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뿐 아니라 친지들이 준 용돈까지 모두 통장에 모았다. 그렇게 쌓인 금액이 제법 되었다. 어느 날 아이는 10만 원이 넘는 레고 세트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결국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거위 배를 가르면 안 돼. 그러면 더 이상 황금알은 낳지 못해.”

그 말을 어디서 들었냐고 묻자,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라는 책에서 읽었다고 했다. 어렵게 모은 돈을 함부로 써버리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그 돈은 아껴 두었다가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 꼭 필요한 순간에 쓰고 싶다고 했다.

그날 나는, 아이가 진짜 ‘부자’가 되는 길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깊이 음미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 원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 애쓸 줄 아는 마음. 모든 걸 가져보는 경험이 아니라, 존재에 가치를 두는 태도. 부모는 누구나 아이에게 이런 의미를 심어주고 싶어 한다. 돈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운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 아르바이트는 훌륭한 경제교육이었다.


아이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학원에서 일하며 직접 용돈을 벌어 쓴다. 고급 브랜드보다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고, 값비싼 스마트폰도 마다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을 줄 알고, 돈을 들이지 않고도 멋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자란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가정에서 시작된 소소한 아르바이트가 단지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 곧 자존의 가치를 일깨워준 교육이었다는 것을. 소유는 순간의 기쁨이지만, 자존은 오래도록 삶을 지탱해 주는 기준이 된다. 어깨가 늘 아팠던 엄마는 지금도 가끔, 쿠폰 열 장을 다 채워 손끝으로 전해주던 아이의 정성과 그 따뜻한 마사지 한 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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