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이 없어야 두뇌가 살아난다

73%의 아이가 한 달 내 새 장난감에 싫증낸다

by 이채이

장난감이 없어야, 아이의 두뇌가 살아난다

–소비보다 창조를 배운 아이의 이야기


장난감이 없다는 건, 아이에게 결핍일까? 아니면 상상력이라는 문이 열리는 순간일까? 베를린에는 조금은 낯선 유치원이 있다.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 텅 빈 교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아이들이 뭘 가지고 논다는 거지?” 그런데 기사를 읽으며,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한 겹씩 벗겨졌다.


장난감이 사라진 자리에, 아이들은 의자를 쌓아 집을 만들고, 천 조각을 이어 지붕을 지었다. 규칙도 설명서도 없었지만, 그들은 놀이의 주인공이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대화가 늘었다는 점이다. “이거 해도 돼요?” 같은 허락보다, “비행기 날개는 몇 개야?”처럼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이 교실을 채웠다.


나는 문득, 우리 아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우리 집에도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집 안에 쌓여 있던 장난감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테이프, 전지, 색종이, 천 조각, 고무줄, 스케치북을 놓아두었다. ‘놀잇감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완성된 장난감을 주는 대신, 아이에게 여지를 건넸다. “이건 뭐야?” 대신, “이걸로 뭘 해볼까?”라고 묻는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창의성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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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이는 ‘뭐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인형이 갖고 싶을 땐 종이로, 천으로 직접 만들어 놀았고 7살엔 손바느질로 마법사의 망토와 천사의 날개를 만들었다. 몰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작은 재봉틀도 선물했더니, 어느새 자기만의 옷을 짓고 있었다. 손끝으로 만들어 낸 마법의 시간들. 그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시작이었다.


김영훈 교수는 말했다. “아이들은 생산을 해야 더 큰 애착을 느낀다.” 정답이었다. 손으로 만든 해리포터 마술봉은 지금도 책장 위에 조용히 놓여 있다. 가장 소중한 것처럼.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소비의 세계에 입문한다. 무엇을 사줘도, 73%는 한 달 안에 싫증을 낸다고 한다. 왜일까? 어쩌면 장난감은 처음부터 아이를 위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이렇게 말했다. “장난감은 부모의 요구에 의한 발명품이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뇌발달을 명분으로 한 고가의 교구들. 수십만 원, 때로는 수백만 원. 하지만 아이의 상상력은, 그 값비싼 물건 없이도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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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장난감은 아이의 욕구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부모의 불안과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집 안을 가득 채운 장난감을 치우는 일이 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장난감에 지친 부모들이라면 과감히 장난감을 치워보라 말하고 싶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장난감을 찾지 않는다. 대신 스케치북을 펼치고, 종이접기를 하고, 책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더해주는 대신, 조금 덜어내는 것. 그 여백에서 피어나는 창의력. 진짜 지능은 소비가 아니라 상상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아이로 키워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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