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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아재 Jan 09. 2024

예민과 섬세

경계를 넘나드는 짧은 여행기

그래도, 오사카의 밤이 그립다




영화 속 건물이 늘어선 길은 인파로 가득했다. 혼잡 사이사이 영화 주인공이 지나가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디를 가든 익숙한 영화 음악과 게임 효과음이 따라왔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Sing 극장이다!”


  애니메이션 sing의 극장을 재현한 건물이었다. 입장 대기 줄 끝에 영화 속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있었다. 청년은 차례가 된 모든 아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환대하는 표정에 거짓은 없었다.

  일할 의지조차 없어져 버린 일본의 청년들. 왜 하필 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는지. 무릎 연골이 의지로 환원되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섣부른 일반화를 반성했다.

  극장 로비는 모니터가 여러 대 있었다. 화면 속 동물 주인공들이 분주하게 무대를 준비했다. 길고 긴 일본어 듣기와 영어 자막 해석. 고통의 시간 끝에 공연장 문이 열렸다. 무대에서 커다란 카멜레온 탈을 쓴 인형이 빠진 눈알을 찾고 있었다.

  극장 주인 코알라가 초승달을 타고 등장했다. 코알라가 안 귀엽기는 어려웠다. 코알라 치고 거대한 것만 빼면. 다음, 더 거대한 고릴라가 등장해 피아노를 두드리며 노래했다. 뭐랄까. 너무 진짜 고릴라 같다고 해야 할까. 다음, 돼지 커플이 나와 신나게 춤을 추었다. 이족보행 하는 돼지가 눈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무대는 점점 더 신나는 음악으로 고조되었다. 관객석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양 끝에 서서 사력을 다해 춤추고 있는 일본 청년들은, 그 생각은 그만하기로 했다.

  수줍은 코끼리 소녀가 긴 코를 덜렁거리며 노래했다. 마이크가 앞발에 붙어 있었다. 한 꼬마 아이 관객이 아빠 품에 머리를 묻었다. 마지막, 주인공 호저가 누구보다 화려하게 등장했다.

  호저가 긴 플라스틱 가시를 철렁이며 객석 사이를 뛰어다녔다. 덜렁거리는 턱관절은 영화 쏘우의 악당 가면을 방불케 했다. 산미치광이의 무대가 폭발하며 꼬마 아이 관객의 울음도 같이 터졌다. 

  일본 청년들은 비극에 굴하지 않았다. 끝까지 밝은 웃음으로 박수를 유도한 그들의 일할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환상의 세계가 그들을 만든 것인지, 그들이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환상의 세계,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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