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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아재 Mar 04. 2024

네모난 퇴근길

짧은 퇴근길, 짧은 생각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퇴근 버스. 창밖으로 밤의 시작을 알리는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진다. 거리는 생기를 회복한 직장인 무리로 가득하다. 상가의 화려한 불빛. 활기찬 기운. 네모난 창문에 갇힌 서울의 밤은 아름답다.

  스마트폰. 손에 든 작은 상자 속 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여행. 행복한 일상. 건강함과 열정이 넘치는 삶. 네모난 기계에 갇힌 세계는 아름답다.

  버스가 정차한다. 카메라를 꺼내 네모난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댄다. 매일 보는 거리가 조각난다. 화려한 불빛, 직장인의 활기가 일순간 정지하며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네모난 필름에 새로운 세계가 갇힌다.

  교통체증. 한 청년이 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네모난 액자 속 청년이 자유로워 보인다. 자유분방한 삶. 그런 삶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다. 그때 꿈꾸던 자유로운 삶은 겉멋이었다. 그저 타인의 시선에 그렇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정류장 도착. 네모난 창문 속 세상으로 돌아온다. 얇은 눈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술에 취한 청년이 비틀거리며 눈이 흩날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옛 추억이 떠오른다. 술에 취해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대학생.

  “내가 가진 모든 사고의 틀을 의심해야 해. 그래야만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어.”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탐닉했던 네모난 책들. 그렇게 집착했던 것 자체가 또 다른 틀이 아니었을까? 혹은, 그 다짐은 여전히 유효한가?

  질문은 눈 속으로 흩어지고 네모난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 또 다른 세상이 있는 네모난 집.

  도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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