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닿을 우체통을 찾아서

by 김소영

짙었던 안개가 걷히고 앞산 능선이 회색빛으로 보여요.


어제는 오후 내내 쓴 편지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오늘 다시 펜을 들었어요.

어제 뽑은 막대의 왕에 대한 편지가 몹시 무거운 내용으로 흘러가서예요. 마무리를 짓지 못한 편지는 잊고, 오늘은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제가 이야기를 잘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요.


오늘은 예전과는 다른 질문을 했어요. 당장 이 편지의 내용을,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지, 줄거리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어떤 카드가 나왔을까요? 첫 번째 카드는 펜타클의 3번 카드가 나왔어요. 오호! 대화를 유도하라는 뜻인가?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내용이면 좋을까? 생각하며 그다음 카드를 차례대로 뽑았어요.

막대의 여왕, 은둔자, 컵 5번 카드, 막대 2번 카드가 차례로 나온 사진을 찍고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KakaoTalk_20250921_121029044.jpg


막대의 여왕의 리드로 시작해 보면 좋을까? 은둔자의 지혜를 총 동원해서, 헝클어진 마음으로 대화를 요청하는 내담자와 함께 있다고 상상해 봐야겠군.

이분과 함께, 삶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는 막대의 2번 카드의 계획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나쁘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고 잠시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저는 최근에 외국에 거주하시는 내담자 분과 전화 상담을 했어요. 상담 내내 즐거운 대화가 오갔고 상담을 마치며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무척 고마웠어요. 저는 사실 힘든 분들을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즐거울 때 저를 찾기보다는 힘들 때 찾아오시죠. 어떤 분은 자신이 너무 힘든 문제를 가지고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상담가는 내담자가 너무나 힘든 내용으로 상담을 해서 내담자 앞에서 울고 말았는데, 오히려 내담자가 자신을 위로해 주었다는 내용을 자신의 책에 썼더군요.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저도 마음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날 거예요. 스치듯 한 번 만나고 헤어질 수도 있지만, 여운을 주는 사람이 있죠. 그 후에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는지 그가 다시 와서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그의 문제가 잘 해결되어 행복하길 기원해요.


저에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 것도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오셔서 그 문제를 똑같이 말하는 분도 계시지만 사실은,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미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어서 내담자는 용감하고 끈기 있게 그 상황을 이기고 이미 승자가 되어있었어요. 연애 문제에서, 처음에는 내담자님이 좋아했고, 상대방은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대방이 관심을 주는 상황으로 바뀐 거죠.


고민할 당시에는 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지금의 문제가 삶의 전부처럼 여겨질 거예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도 마음처럼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싫은 일이죠. 아이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사랑을 받고 응석을 부리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는, 성장은 자신을 책임지는 일이라, 거부하고 싶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이 지나면 나와야 하듯이, 만약에 이를 거부하면 아이도 어머니도 생명이 위험해지죠. 우리는 성장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어요.


누군가의 한마디 말을 듣고 깨우치든, 스스로 깨우치든, 지금 컵 5번의 마음처럼 앞으로의 삶에 낙이 없고 모든 것이 엎질러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깨우쳐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단계에 와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두 번째의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인 거죠.


예전에 누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내담자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타로 리더로서 자부심이 있나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창피하게도 생각하지 않지만, 특별한 자부심도 없어요.

어쩌다 보니, 타로 카드가 무엇이고 어떤 직업인지도 모르고 우연히 이끌렸고, 가볍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여기까지 온 거였다고.


시간이 지나 지금은 사랑하게 되었고 타로카드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싶어 졌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타로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보다 더한 애정이 생겼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두 가지의 의문은 남아있어요. 그중 하나는 타로카드는 미래를 미리 보는 용도로 쓸 수 있을지, 나머지 하나는 타로 상담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힌트나 조언을 얻을 수 있을지의 문제 말이에요. 두 가지를 혼용할 수도 있고, 어느 한 가지에 더 중점을 둘 수도 있겠죠? 쓰고 싶은 자의 마음이겠죠. 저는, 상담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두 가지를 혼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쓴다면 더 깊은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 너무 미래를 보는 쪽으로만 활용된다면 내담자와 상담가 모두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거예요. 마치 어쩔 수 없는 운에 모든 것을 맡기거나 상황에 이끌리게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정성스럽게 쓴 첫 편지는 휴지통에 던져버렸지만, 나중에 다시 꺼내도 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지면, 어디든 당신에게 닿을 우체통을 찾아 다시 보내드리려 해요.

오늘도 밤이 오기 전 아직 햇빛이 남아있을 때 서둘어 산책을 나가야겠어요.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7화파멜라 콜먼 스미스 여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