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은 지 11개월 째다. 평소에 속 쓰림이 있어서 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건강 검진 후 커피를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위가 편해진 느낌이다. 커피를 진하게 내려서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달게 마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유와 설탕 섭취도 줄어들었다. 매일 커피에 빠져,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라테, 캐러멜마끼야토, 믹스커피, 캔커피, 에스프레소 모든 종류의 커피를 가리지 않고 마셨다.
커피와의 추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이제는 향긋한 녹차와 마테차와 다양한 차를 사랑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커피와는 다른 향기, 아무것도 넣지 않은 원료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찻물에 꽃이 피어나는 꽃차와 강렬한 허브차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을 달래주는 멋이 있다.
나는 커피를 끊었고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를 끊었다. 기독교는 어머니의 인생 전부였고 아버지의 인생이며 동생들의 인생 전부다. 나는 어떤 순간에 기독교와 멀어졌을까.
결혼하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 당시 아이와 헤어진다면 어쩌면 다시는 아아와 만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모두 이혼 후에도 서로 아이를 양육하고 주기적으로 만나서 아이를 볼 수 있는 여력조차도 없었던 형편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과 노름과 술친구들에게 미쳐 살았던 상대방이 착실하게 아이를 키울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혼자서 키우더라도 아이와 헤어지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쟁 상황도 아닌데.
결국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내야 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하려면 아이는 맡지 않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조건을 달았다. 그 당시 나는 이혼이 시급했기 때문에 나중에 아이를 데려와야겠다고 속으로 마음을 먹고 아이를 전남편의 집으로 보냈다.
그 후 3년이 지나지 않아 아이를 다시 데려와서 양육비 한번 받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는 쉬웠다. 상대방도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고 돌보지 않았으며 집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고모들이 번갈아 챙겨줬을 뿐이었으니까.
여기서 왜 기독교 이야기가 나왔을까. 나의 신앙이 바뀐 이유는 삶의 현실 앞에서였다. 사랑하는 하나님이 내가 낳은 아이 하나를 함께 키우지 못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 만했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아이를 맡지 말라고 한 것도 결국 나의 미래를 위해서였겠지만, 아이를 보낸다고 해서 내가 아이 엄마라는 것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 깨끗하게 독신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결혼과 출산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면 함께 키울 생각을 하고 지원을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나를 위해서라 해도 부모님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걸 모르고 계시거나 모른척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이때 하나님의 정체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거 하나 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한 신이군요. 그렇다면 다른 신을 알아본다거나 내 힘으로 살겠소.
아이를 혼자서 키우면서 세상과 나와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겨우 생존만 하기도 벅찼다. 국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보 부족과 내가 하고 있는 사업에 몰두하느라 도움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시기를 겪으면서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명상에 관심이 갔고 불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종교에도 메이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내담자 중에는 타로카드로 상담받기를 좋아하는 기독교인이 있다. 타로를 대화와 상담의 도구로 친근하게 여기며 즐긴다. 나는 기독교인의 신앙심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어릴 때처럼 신앙심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하나님을 믿는 '자신'은 진리의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하면 당황스럽다.
천국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살아있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이라면 모든 사람의 삶 자체를 존중해 주지 않을까? 다른 종교가 기독교를 존중해 주듯이 기독교도 타 종교를 존중해 줄 수 없는가? 내 종교가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린 대화할 수 없게 된다.
마테차나 한 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