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살다 보면 지금은 불행처럼 보이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나를 구해 준 사건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무너진 줄 알았지만, 돌아보면 그 무너짐이 내가 오래 서 있을 수 있도록 뿌리를 단단히 만들어주었다. 아마 그것이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의 본뜻이지 않을까 한다. 불행이 축복으로, 후회가 기회로, 모든 일은 언젠가 방향을 바꾸어 우리를 살게 한다.
나는 매일 아침 타로 카드 두 장을 뽑는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뽑힌 카드를 읽어 보며 조용히 하루를 명상해 본다. 타로는 묘하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고, 묻는 순간에는 내 안의 생각을 꺼내 보여준다. 카드를 해석한다는 건 결국 그림 속에 숨은 상징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의미는 카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래서 타로를 진짜로 잘 쓰는 사람은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가끔 인생이 엉망이 되는 것 같은 날이 있다. 모든 일이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무너질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때야말로 새옹지마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그 사실을 뒤늦게야 안다. 괴롭고 답답해서 발버둥 치던 그날이 사실은 다음 문을 여는 열쇠였다는 걸, 그때 포기하지 않고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걸.
“이 일의 결과는 어떨까요?” 누군가는 내게 타로를 보여 달라고 묻는다. 좋지 않은 카드가 나오면 ‘왜 그렇게 나왔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 마음을 안다. 결과가 두렵고, 현실이 갑갑하니까. 하지만 인생의 모든 카드는 배우는 과정이다. 타로가 가르쳐 주는 건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다.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된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전환점이 되고,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성숙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걸 믿지 못하면 새옹지마의 지혜도 사라진다. 결국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타로는 그 과정을 잠시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다.
지금의 슬픔이 내일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믿는 한, 인생은 여전히 새옹지마다. 아마 그 변방의 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언젠가 나를 더 깊은 자리로 데려간다. 타로카드 속 은둔자가 그랬듯, 그는 세상을 떠나 홀로 있었지만 이미 세상의 지혜를 알고 있었다.
나는 은둔자 카드를 좋아한다. 회색의 어두운 분위기의 카드에는 은둔자가 높이 들고 있는 불빛만이 밝고 경쾌하다. 그는 제자를 찾아다니지도 않지만 깨달음을 얻으려 찾아오는 자에게는 자신이 가진 지혜와 경험을 기꺼이 내준다.
다 가졌으나 내세우지 않는다. 당신도 나처럼 내가 아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고 따스하게 주변을 밝힐 뿐이다. 설산에 선 고독한 은둔자,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가 든 등불은 모두를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