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우연

불행한 그림 속 우연의 겹들을 걷어내면...

by 고운 저녁

겹겹의 우연


투명한 비명을 목에 걸고

가장 불행한 그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참여로 완성되는 사각의 틀


뿌연 레이스 커튼 뒤

얼룩진 유리창

그 뒤에 바짝 붙은

먼지 낀 방충망

네모 반듯한 창틀

그 너머로 무심히 서 있는

십자가 같은 전신주

마침 곁을 배회하는

까마귀 몇 마리

막 전쟁의 포화가 지나간 자리처럼

스산하고 음산하게 울리는 곡조


얼마간 떨어진 침대 위

허밍 같은 흐느낌과

눈물을 싣고

물방아가 초침에 맞춰 깜빡였다

격정의 포르티시모를 잠재우고

크레셴도를 이끄는

시간의 지휘봉


마침내 그림에서 빠져나와

가까스로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연 후

방충망까지 밀어낸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다


무거운 우연의 겹들을 걷어낸

그림 속 하늘은

그냥 맑았다

마냥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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