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선물

고된 하루의 끝, 오롯이 나로 있는 시간

by 고운 저녁

밤은 선물


하루를 살아낸 기특한 어깨 위에

가득히 얹혀 있던 건

햇살만은 아니었지만

이제 겨우

발 뻗고 누운 사람들을 위해


밤이 줄지어

약속된 거리를

두루 지나는 동안


아이는 한 움큼 꿈을 펼치고

상처는 수 밀리미터 살을 돋우고

지혜는 한 뼘 발돋움하고

화는 먼지처럼 가라앉고


밤이 소리 없이

하루의 빈 틈을

느리게 채우는 동안


고양이는 혀를 키워 코털을 가다듬고

바람은 나무들의 구멍을 메우며 오르골을 연주하고

깃털은 철통같이 알을 품고

쥐는 잠든 신발 속에 분홍빛 새끼를 낳는데


잠든 이에게는 평안을,

깨어 있는 이에게는 위로의 숨결을,

저마다의 사연을 보듬는 밤은

너그러운 인사를 건네며 흐른다


밤의 손길이

구름에 가려진 울음들을 모아

거리를 촘촘히 적시는 동안


고독은 취해 달에게 주절거리고

사랑은 술기운에 현실을 망각하고

술잔은 욕조만큼 부풀고

이야기가 닳기도 전에 기억은 이미 떠났지만


밤이 어둠 속에서

시간의 주름을 꺼내

침묵의 실로 꿰매는 동안만큼은


산 것과 죽은 것들이 발 뻗고 누워

서로를 그리워하기에도 좋은

이 어두운 밤은

책갈피 속에 오래 간직한

자비로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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