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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나는 누구?

사무관의 추억 - 4

by 사무관과 변호사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부처에 배치받고 나면 내가 '무언가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업무는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이 때부터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심각한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그 때의 일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나는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지만 독자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글은 다른 공무원들의 글, 특히 나와 마찬가지로 행정고시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무관들의 글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글들 속에서 사무관(작가)들은 한결같이 업무가 정신적으로 힘들다면서도 간간이 느껴지는 보람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참 부러운 일이다. 나는 공무원 생활 5년 동안 내가 하는 업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담당한 업무는 무의미함, 그 자체였다.


내가 부처에 배치받고 나서 처음으로 담당했던 업무는 크게 3가지였다. 1) 법령에 따라 루틴하게 이루어지는 A 업무, 2) A 업무 뿐 아니라 우리 부서 전체의 업무(이하 'Z 업무'라고 하겠다)와 관련하여 세미나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업무, 3) Z 업무와 관련하여 해외에 홍보하고 재외 한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업무였다. (나는 이 당시부터 A 업무를 비롯한 위 3가지 업무가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도 담당하는 공무원이 있기에 무슨 업무인지는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먼저 A 업무부터 보자. 사실 A 업무는 독자적인 업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지엽적인 일이었다.


계란후라이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사람이 여러 명 있다고 해서 계란후라이 만드는 과정을, 1) 누구는 계란을 사온다, 2) 누구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3) 누구는 기름을 달구고 프라이팬에 계란을 떨어뜨린다 ... 하는 식으로 분담해서 하지는 않는다.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간단한 일은 1명이서 하면 충분하고, 여러 명이 분담해서 하면 오히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A 업무는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계란을 깨뜨린다' 정도에 속할만한 지엽적인 업무였다. 업무가 이렇게 잘게 쪼개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체 정부조직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그 일환으로 내가 소속된 부서가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기존에는 3~4명이서 처리하던 업무를 불과 몇 년 사이에 30여 명이 처리하게 되었다. 조직은 커졌는데 업무는 그대로니, 조직구성원들에게 뭐라도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기존보다 훨씬 잘게 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Z라는 하나의 덩어리였던 업무가 A, B, C, D, E, ...하는 식으로 나뉘었고, 그 중 A 업무가 나에게 분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3~4명이 처리하던 업무를 왜 30여 명이 처리하게 된 건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사실 3~4명이 그대로 남아 처리해도 되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공무원들의 '승진자리 확보' 때문이었다.


공무원 조직은 법령으로 정원(TO)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B 부처는 고위공무원 가급이 몇 명, 나급이 몇 명, 3급이 몇 명 ... 하는 식이다. 심지어 부서 단위로도 정원이 정해져있다(부처와 부서는 다르다. 부처를 회사에 비유하면, 부서는 회사 내 재무팀, 회계팀 같은 단위부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B 부처의 C 부서에는 4급이 2명, 5급이 3명, 6급이 3명 ... 하는 식이다. 따라서 공무원은 상위직급의 정원이 모두 채워져있다면 원칙적으로 승진할 수가 없다. 4급 정원이 2명이고, 4급 현원 역시 2명이라면, 5급인 사람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승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난 글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공무원에게 승진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은 소속 공무원들을 승진시키고자 이러한 TO의 제한을 우회하려고 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정부조직 개편시기(보통 정권교체 시)에 편승하여 어떠한 명목을 들어서라도 조직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Z 업무는 원래 3~4명이서 하던 업무다. 이러한 경우 TO는 아무리 잘 해봐야 4급 1명, 5급 1명, 6급 또는 7급 1~2명 정도다. 그러나 30명으로 조직을 뻥튀기한다면? 잘하면 고위공무원 나급 1명, 4급 2~3명 TO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고, 5급 이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공무원조직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승진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3급 1명을 고위공무원 나급으로 승진시킬 수 있고, 그렇게 비게 된 3급 자리에 4급 1명을, 다시 그 자리에 5급 1명을, ... 하는 식으로 수십 명을 연쇄적으로 승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연 이 업무가 30명이나 달라붙어 수행해야 하는 업무인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단 조직을 확대하고 그에 맞춰 업무량을 불리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공무원에게 중요한 건 승진이고, 공무원 조직은 소속 공무원들을 위해 어떻게든 승진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혈안이 돼있기 때문이다.




내가 담당하던 세미나 업무와 해외 홍보 업무는 이처럼 Z 업무의 업무량과 업무범위를 어떻게든 확대하려는 몸부림에서 파생된 업무들이었다. 만약 우리 부서가 Z 업무를 그대로 수행한다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3~4명이서 하던 업무를 왜 지금은 30명이서 수행하느냐는 외부기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다시 줄어들게 되고, 결국 우리 부처가 우리 부서의 정원을 뻥튀기시키면서 어렵게 확보해낸 승진 자리도 잃게 된다. 이러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개발해낸 업무가 세미나와 해외 홍보였다. 다시 말해, "우리 이제 이러이러한 업무도 추가해서 수행하고 있으니, 우리 정원이 크게 늘어난 것은 정당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업무들은 사실 '수요 없는 공급' 그 자체였다. 나를 비롯한 우리 부서원들은 그 누구도 관심없는 세미나에 제발 참석해달라고 다른 부처 및 공공기관 수백여 곳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했다(사기업에 대해서는 참석해달라고 독려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사기업은 우리가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바쁜데 필요도 없는 세미나 참석을 왜 강권하느냐'고 온갖 불평불만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세미나는 나은 편이었다. 어찌됐든 개최는 했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기는 했지만) 내용이 유익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현타'를 느꼈던 업무는 해외 홍보 업무였다. 이 업무는 목표랄 것도 없었고, 그에 따라 당연히 성과랄 것도 없었다. 부서장 역시 그 업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연하다. 애초에 그 업무는 필요에 의해 생긴 업무가 아니라, 오로지 정원 확대가 정당했음을 주장하기 위하여 개발된 업무였으니까. 그래서 이 업무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다른 조직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가게 되어 오히려 내가 욕을 먹는 구조였고, 단지 관련 예산을 어떻게든 다 집행하기만 하면 되는 업무였다. 그래서 내 이메일을 받은 해외 한인들이 나에게 이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이 여기에 참여하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올 때마다 나는 너무 난처했다. 그런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업무들을 처음 맡았을 때에만 해도 나는 이런 배경들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담당업무들의 내용은 이상했기에 나는 업무가 시작된 경위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결과 내 업무들 모두가 실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업무가 아니라 단지 공무원 조직이 승진자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내가 '사무관'이라는 직업에 갖고 있던 환상이 산산조각난 것이다.


그 때 내가 느낀 실망감이 어찌나 컸던지 나는 공무원이 된 지 1년 만에 충동적이나마 퇴직을 고민했었다. 앞으로 내가 인사이동을 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소속된 부처는 모든 부서를 이런 식으로 확대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부서로 이동해봐야 정도만 다를 뿐 일이 무의미한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무의미한 일에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에게 지방자치단체로의 인사교류 제안이 왔다. 원래 행시로 들어온 사무관은 수습이 끝난 후에도 다시 3년이 지나야 부처를 옮길 수 있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이 되는 경우에 대한 기간 제한은 없었다. 나는 그 제안에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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