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의 추억 - 3
얼마 전 2025년 행정고시 합격자들의 출신 대학에 관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합격자 수 차이가 1명이라며, 서울대의 독주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보도였다.
해당 언론에서 추산한 합격자 수가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합격자 설명회에 참석한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각 대학별 고시반 합격자 통계를 수합하여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정부는 행시 합격자의 출신 학교 통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합격자 수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서울대생들이 행시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추세는 명확하다. 이런 변화는 내가 지난 글에서 썼던 '출세주의 판사'의 소멸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오늘은 내 사무관으로서의 경험보다는 이런 사회변화에 대한 나의 감상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광역지자체에서 사무관 생활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나는 처음에 중앙행정기관[실무적으로는 중앙부처 또는 부처(部處)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소속, 그러니까 국가공무원이었다(내가 왜 지방공무원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처음 내가 부처에 배치받았을 때 일이다. 내 전임자는 나보다 고시 기수로는 3년 선배인 K 사무관이었는데, 그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대뜸 아래와 같이 물었다(아래 대화는 100% 실화다).
"김OO 사무관님, 집에 돈은 좀 있나요?"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다 교사였기에 생활이 어렵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유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집이 부유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대학이 서울대인가요?"
이번에도 역시 아니라고 대답했다(나는 이른바 'sky' 출신이 아니다). 나의 대답을 듣자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귓속말을 했다.
"그러면 얼른 이 부처를 떠나세요. 둘 중 하나에도 해당이 안 되면 힘들 거예요. 저는 곧 떠날 겁니다."
그 당시 26살이었던 나는 K 사무관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고 웃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몇 달 안 되어 다른 부처로 떠났다(정확한 표현은 '전출'이라고 한다). 그는 연세대 출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K 사무관의 말처럼 행시로 들어온 고시사무관들의 주류는 서울대 출신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합격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연수원 동기들의 출신학교를 대략적으로 구분해보면, 1/3은 서울대, 다시 1/3은 연고대, 나머지 1/3은 기타 대학이었다. 이런 경향이 몇십 년 동안 이어졌다고 해보자. 중앙부처의 차관, 실국장들까지 서울대 출신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조직의 주류는 서울대 출신이 된다.
다만 그 당시 나는 이러한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 하던 사람이 대학생 때도 공부를 잘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학생 때 공부를 잘 한 사람이 고시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행시 합격자 중에 서울대 출신이 많은 건 통계적으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고위공무원들의 출신 학교 중에 서울대가 너무 많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언론이 억지를 부리며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합격자 중에 서울대 출신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 아닌가?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에서 누락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나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학벌에 따른 불이익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우대를 받은 걸 본 적도 없다. 물론 K 사무관처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무원의 승진에는 학교보다 업무능력과 관운(官運)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언론보도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어떠한 직업에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울대 출신의 비중'을, '그 당시 시점에 공부나 시험 쪽으로 진로를 설정한 사람들이 그 직업을 선호하는 정도'로 해석한다. 신규 진입자 중 서울대 출신의 비중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선호되는 직업인 것이고, 만약 서울대 출신의 비중이 1등이라면 선호가 매우 강한 직업인 것이다.
이는 검사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2016년만 하더라도 신임 검사 중 25%(12명)가 서울대 로스쿨 출신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7.8%(7명)에 불과하다. 범위를 연고대 로스쿨까지 넓혀도 sky 로스쿨 출신의 비율이 하락하는 추세는 뚜렷하다. 신임 검사 중 sky 로스쿨 출신의 비중은 2016년 50%(24명)였지만, 올해는 14.4%(13명)이다. 9년 만에 1/3 토막이 난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기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검사라는 직업을 매섭게 비판해왔다. 그 결과 검사의 위상은 꾸준히 떨어져왔다. 이제는 더 이상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검사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이처럼 검사의 위상 추락과 신임 검사 중 서울대 출신의 비중 감소는 함께 찾아왔다.
나는 이 변화를 비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미 그 길을 떠난 사람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행시가 선호되지 않는 모습을 아무런 감정 없이 볼 수도 없다. 행정고시와 공직은 내 젊은 시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세계였고, 그 안에서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대의 행시 독주가 끝나간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드는 감정은 내 선택이 옳았다는 환호도, 해방감도 아니다. 오히려 서글픔, 사자성어를 빌리자면 맥수지탄(麥秀之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