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14
지난 일주일은 조금 특이한 기간이었다. 내가 만났던 고객들이 모두 '전관 변호사', 특히 판사 출신 변호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전관 변호사를 찾는 고객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지난 주처럼 고객 전부가 전관 변호사를 찾은 적은 없었다.
'확실히 고객들은 전관 변호사를 선호하는구나'라고 느꼈던 한 주였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지금까지 봐온 '전관 변호사'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물론 내 변호사 경력이 일천하니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전관(前官)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전관은 말 그대로 이전에 관에 있었다는 뜻으로, 보통 판사나 검사로 오래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나온 변호사나 장관이나 차관 등 고위공무원을 역임했던 전직 공무원을 말한다(이하에서는 판사나 검사 출신 변호사를 '전관 변호사', 전관 변호사에 전직 고위공무원을 합하여 '전관'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전관을 선임하면 소송에서 이기고, 규제기관의 규제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은 대부분 오해다.
내 공무원 시절의 경험부터 풀어보자. 사무관으로 일하던 어느 날 나는 한 행정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나와 일면식도 없던 그는 자신이 몇 년 전 내가 소속된 실(室)의 실장으로 퇴직했다며 자신이 그 분야에 빠삭한 사람이라고 한참을 자랑하고 나서야 본론을 꺼냈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자신이 맡아 처리하는 사건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내부 검토자료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공직 선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의 반말도 참아 넘기던 나는 거기서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몇십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으면서 한참 후배한테 이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허튼 소리하지 마라'고 화내자 그는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처럼 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그 행정사의 요구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의 청렴함이 특출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 행정사에게 내부 검토자료를 건네준다고 해서 담당 공무원이 얻을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나중에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만 아주 크기 때문이다(실제로 내가 일했던 부서에서는 상대방 업체로부터 아이패드를 받은 게 적발되자 자살한 공무원이 있었다). 다시 말해, 담당 공무원이 실성한 게 아니고서야 이처럼 손해가 뻔히 보이는 일에 응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인간은 그 본성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전직 공무원이 요청한대로 움직인다고 믿는 것은, 공무원이 이런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판사나 검사를 했던 전관 변호사의 경우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민사의 경우 질 것도 이기고, 형사의 경우 유죄도 무죄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건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믿음이다. 담당 판사나 검사 입장에서 무슨 이익이 있다고 그렇게 할까? 오히려 괜한 트집을 잡혀 불이익을 보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몸을 사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런 전관 변호사의 힘이 굉장히 강하게 발휘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수임'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현실과 무관하게) 전관 변호사에게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로펌들은 그에 맞춰 전관 변호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수임을 한다. 그래서 전관 변호사 중에는 간혹 사건 기록은 전혀 읽지 않고 고객과 회의하는 자리에만 얼굴을 비추는 변호사도 있다. 고객은 전관 변호사가 사건을 처리해준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서 좋고, 로펌은 수임이 되어서 좋고, 그 전관 변호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아가니,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아닐까.
변호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 출신 전관도 주로 고객에게 일정한 이미지(예를 들면, 이 로펌은 규제기관에 대한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겠구나, 라는 인식을 들 수 있겠다)를 심어주는 역할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전관 변호사 중 상당수는 그래도 실무를 하지만, 일반 공무원 출신 전관들은 실무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펌에서는 그런 전관들을 보통 '고문(顧問)'이라는 이름으로 고용한다. 앞서 말했듯이 고문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애초에 법을 다루는 로펌의 특성상 고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적기도 하다). 고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영업이다. 로펌 홈페이지에 그 고문의 이름과 경력이 올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로펌의 고객이 되는 기업들에게는 '이 로펌은 해당 기관에 대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그 고문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현실과 무관하게, 고객이 그렇게 믿고서 로펌에 사건을 맡긴다면 로펌은 그 고문에게 주는 월급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다.
내가 전형적인 예로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한덕수 전 총리다. 윤석열 정부 초기 한덕수 전 총리가 다시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 그 당시 야당은 한덕수 전 총리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를 밝히라고 압박했었다. 나아가 한덕수 전 총리가 행정부에 대한 로비스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냐며 공격했었다.
그러나 한덕수 전 총리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앞서 말했듯이, 김.장 법률사무소는 '우리 사무소는 전 국무총리를 고문으로 두고 있을 정도로 행정부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정도의 영업효과만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이 한덕수 전 총리를 공격할수록 김.장 법률사무소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언론에 그런 내용의 기사가 도배될수록 김.장 법률사무소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홍보가 되니까.
그래서 전관을 선임할 때에는, 그 전관이 이전에 소속돼있던 기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겠구나, 정도만 기대해야 한다. 판사 출신이라면 판사들이 주로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판사가 심증을 어떻게 굳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검사 출신이라면 검사가 어떤 경우에 불기소를 하는지를 체득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걸 넘어 결론 자체를 뒤바꿀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물론 높은 이해도로 인해 결론이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전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글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9회에서, 김 부장이 퇴직 후 영업을 위하여 ACT에 찾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겠다. 이 장면은 현직자에서 퇴직자로 뒤바뀐 처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김 부장이 그나마 ACT에서 퇴직했기 때문에 ACT에 수월하게 영업하러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부장이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어쨌든 해당 사업은 성사됐을 것이고(극중에서 송 과장은 해당 사업을 좋은 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신생 업체가 ACT에게 6개월 간 무상으로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결론도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조계에서의 전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