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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처우 개선에 대하여

사무관의 추억 - 5

by 사무관과 변호사

얼마 전 행시 후배가 로스쿨에 합격했다며 나에게 변호사로서의 삶에 관해 물었다. 행시 기수로는 후배였지만 나보다 사무관 생활을 더 길게 한 분이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우연히 연락이 닿게 되었는데, 그 분의 질문 중 하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전망이었다. 매년 1,700명씩 변호사가 늘어나고 AI까지 등장해 변호사를 대체한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전망은 어떻느냐고 물었다.


'전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았다. 향후 예상되는 소득을 말하는 것인지, 사회적인 지위라는 부분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분이 충족되면 사회적인 지위도 대체로 따라오기 때문에, 나 역시 구구절절 반문하지 않고 단순히 예상소득을 묻는 질문이라고 전제한 다음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하였다. '변호사로서 잘 안 풀려도 공무원보단 낫지 않겠느냐'라는 한마디만 더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공무원의 향후 '전망'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공무원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는 단기적으로 공무원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며, 장기적인 공무원의 전망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여기서 이야기하는 '단기'와 '장기'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단기', '장기'와 비슷하다).




공무원의 처우라는 표현은 너무 모호하지만, 일단은 연봉부터 시작해서 근무환경, 워라밸 등 사람들이 직업을 고를 때 고려하는 주요 요소들을 뭉뚱그려 '처우'라고 표현해보자. 이러한 공무원의 처우가 지금보다 개선되려면, 공무원의 채용 인원, 그러니까 정부나 지자체에서 필요로 하는 공무원의 수(수요) 대비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수(공급)가 줄어야 한다. 수요 대비 공급이 줄어야(다른 말로 하면 공급 대비 수요가 늘어야) 가격이 올라간다는 간단한 논리다.


예를 들어 내가 행시를 준비했던 2010년 중반대만 하더라도 아무도 공무원 처우 개선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무원 준비에만 사람들이 몰려 문제라는 지적만 있었다. 반면 이른바 'MZ 공무원'들이 그만두는 지금에 와서야 공무원 처우 개선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공무원 처우 역시 시장논리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공무원 처우 역시 공무원 인력에 관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겠다.


우선 공무원 채용 수요를 보자. 이 수요는 늘기가 어렵다. AI를 비롯한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고 인구는 감소하는 나라에서 공무원을 대대적으로 채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무원 채용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고 강하게 추진했지만, 채용인원을 드라마틱하게 늘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과잉채용된 반작용으로 몇 년 후 채용인원을 평년보다 훨씬 줄여야 했다.


그러면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 즉 공급은 어떨까? 이 때 중요한 건 신규채용에 지원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존 공무원도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를 산정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원에 신규로 지원하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만약 기존 공무원들이 그만두지 않는다면,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총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경력이 몇 년 이상 된 기존 공무원은 휴직이라면 몰라도 퇴직은 쉽게 하지 않는다. MZ 공무원들의 퇴직 러시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긴 하지만, 실제로 통계를 보면 그렇게 많이 늘지는 않았다. 더욱이 통계에는 공무원 퇴직으로 잡히더라도, 실제로는 다른 직렬 또는 직급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처럼 기존 공무원들이 쉽게 퇴직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을 퇴직하더라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순환보직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쌓기 어렵고, 그나마도 쌓이는 전문성이라는 것도 공공 분야에 국한되어 있어서 민간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공무원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평생 공부만 해온 점을 살려 학원 강사는 할 수 있었겠다). 그래서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아주 느린 속도로 줄어들 뿐이다.


위 내용을 종합해보자. 공무원 채용 수요는 늘지 않는다.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반면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줄어들더라도 아주 조금씩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 처우는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




더욱이 내 생각에 공무원 처우 개선에는 두 가지 벽이 있다. 첫째, 국민들의 반감이다. 공무원 처우를 개선하려면 돈이 든다. 그리고 그 돈은 국민들로부터 걷는 세금에서 나온다. 그래서 공무원 처우를 개선할수록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공무원 처우를 개선한 결과 유능한 인재가 공직에 들어와 좋은 정책을 만들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낸 세금 이상으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여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추상적인 꿈 같은 이야기이고, 세금부담은 숫자로 찍혀나오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민들이 공무원 처우 개선에 동의할까?


둘째, 정부 예산의 제한이다. 정확히는, 정부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공무원 처우 개선은 매우 아랫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부 예산은 누가 편성할까? 기술적으로야 기재부 공무원들이 편성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선거로 집권한 행정부와 여당이 주로 결정하고, 여기에 야당의 의견이 일부 반영된다. 즉, 공무원이 아니고 정치인이 예산의 사용처를 결정한다. 그런데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선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여야를 떠나 예산은 '국민들에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쓰이게 마련이다. 노인 대상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보자. 선거가 가까워질 때마다 기초연금은 조금씩 올라서 10년 만에 약 2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처우 개선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생각은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기 전에도 했던 생각이다. 관련된 연구자료나 논문을 찾아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미련없이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참고로 2017년 내가 처음으로 받았던 사무관 월급이 284만 원(세후)이었다. 2025년 기준으로 1년차 사무관은 아마 300 초반쯤 받을 것이다. 이것만 봐도 공무원 처우 개선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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