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누명을 쓴 5급 공무원 교육생

사무관의 추억 - 6

by 사무관과 변호사

얼마 전 고위공무원 몇 명이 우리 로펌을 찾아왔다. 억울하게 해임 처분(엄밀히는 해임 처분이 아니지만 편의상 해임 처분으로 표현하겠다)을 받았는데, 이를 다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공무원 경력이 있는 내가 담당 변호사로 투입되었다.


사건에 투입된 후 자료를 살펴보니 확실히 의뢰인들이 억울함을 느낄만했다. 의뢰인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해임을 당해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정권 교체기에 으레 있는 일이다). 한편, 이 사건을 수행하면서 과거 사무관들 사이에서 떠들썩했던 이슈가 떠올랐다.


바로 2019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실제로는 '연수원'으로 불리므로, 이제부터는 연수원이라고만 하겠다)에서 있었던 '몰카 논란'이다. 나는 그 당시 이미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으므로 연수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워낙 자극적인 이슈여서 다른 기수의 사무관들도 웬만하면 알던 사건이었다. 오늘은 그 사건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신원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이 사건을 다뤄도 될지 고민했지만, 이미 언론보도도 많이 되었고 심지어 나무위키에 항목까지 개설된 것을 보고, 사건내용을 간략히 하여 다뤄보기로 했다. 당사자가 너무나 억울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에 입소한 남자 교육생(A)이 단체 활동을 하다가 사진을 촬영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니스커트와 레깅스를 입은 여자 교육생(B)의 뒷모습이 찍혔다. 그걸 본 옆 자리 교육생들이 B에게 '몰카인 것 같다'고 말하자, B는 연수원에 그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A의 퇴학을 요구했다. 이에 연수원은 A에 대하여 징계 절차를 진행하여 퇴학 처분을 한 후 형사고발까지 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A는 음흉한 성범죄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반전이 있다. A가 연수원을 상대로 퇴학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1심, 2심 모두 승소한 것이다(연수원이 상고를 포기했기 때문에 3심은 없었다). 행정소송뿐 아니라 형사사건에서도 A는 검사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 변호사가 된 직후 해당 사건의 1심과 2심 판결문들을 모두 구해서 읽어본 적이 있다(궁금한 사람은 서울고등법원 2020. 9. 10. 선고 2020누38579 판결을 찾아보라). 판결문들을 읽고 난 후 내 감상은 '오해가 쌓이면 사람 1명을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공무원 조직은 절대 공무원 개인의 편이 아니구나'였다. 그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A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봤다면, 조직 차원에서 A의 억울함을 조금만이라도 알아주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린다. 그러나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A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연수원 내 단체 활동하는 사진을 찍어왔다. 그런데 A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이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우연히 B의 뒷모습이 사진에 담겼다(2심 법원은 B의 뒷모습이 찍힌 건 A의 고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했다). 이를 본 옆 교육생들이 A의 의도를 오해하고서는 B에게 사진이 찍힌 사실을 전달했고, B 역시 A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곧바로 연수원 측에 이를 알렸다. 연수원은 징계 절차를 졸속으로 진행한 다음 A에 대해 퇴학처분을 했다.


이 사건에서 누군가가 크게 잘못한 건 없다. A는 당연히 잘못이 없다. A의 의도를 오해하여 B에게 잘못 전달한 교육생들도, 당시 몰카에 예민하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B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B 입장에서는 A가 성범죄자로 느껴졌을 텐데 굳이 A와 대화를 해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A와 대화를 시도하는 게 B에게는 고통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문제는 연수원의 대응이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연수원 측은 절차상 아주 필수적인 것들만 지켰을 뿐, 정황상 실제로는 A를 이미 성범죄자로 단정짓고 퇴학처분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 신속하게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2심 법원이 판결문을 아주 길게 작성해 연수원 측의 절차적, 실체적 위법을 조목조목 지적한 게 그 방증이다. 1심 판결과 2심 판결의 결론이 같다면 2심 판결문은 보통 1심 판결문을 인용할 뿐, 새로운 내용을 길게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건은 1심과 2심 모두 원고(A)의 승소로 결론이 같음에도, 2심 법원은 이례적으로 연수원 측의 위법들을 아주 상세하게 판시했다.


사실 공무원을 해본 입장에서 연수원의 대응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여기서 인재원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며 절차를 엄격히 지켜서 A에 대한 조사를 했다면, 그 당시 사회 분위기상 인재원은 '성인지감수성이 전혀 없는' '성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감싸는' 조직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당장 A를 성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는 B와 주변 교육생들은 물론 언론도 인재원을 맹비난할 것이고, 나아가 온갖 감사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담당 공무원들은 아주 피곤해질 것이다. 운이 나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반면 A를 일단 퇴학시켜버린다면, B와 교육생들, 언론으로부터 비난받을 일도 없고 감사를 받을 일도 없다. 담당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A가 억울하든 안 하든 일단 퇴학시키는 게 우월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A를 퇴학시킴으로써 인재원의 담당 공무원들이 당장 편해지더라도, A의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시간과 돈을 날린 것은 물론, 사회적 평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억울함이 밝혀지더라도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만으로 그 사람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린다.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 하는 게 직업적 의무인 변호사들조차 사석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경우가 꽤 있다. 변호사들도 이런데, 공무원 사회처럼 소문이 빠른 폐쇄적 조직에서는 어떨까. 나는 A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를 동정한다.




내가 이 사건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우리 로펌에 찾아온 그 고위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억울함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에게 해임이나 면직은 단순한 인사조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경력과 명예, 그리고 남은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의뢰인이 억울하다고 확신하지만 법원은 나와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공무원 조직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가장 안전한 선택’이, 언제나 가장 정의로운 선택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무원 조직은 비난에 아주 민감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 비난을 피하는 데에만 익숙해질수록 결국 누군가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희생은 언제나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지금 내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적어도 이렇게 조직의 선택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만큼은 제대로 해보고 싶다.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사건 중 가장 보람찬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참고로, 썸네일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와 그의 조력자 파리아 신부다.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되지만, 그의 억울함을 알아준 파리아 신부의 도움 덕에 탈옥하여 복수에 성공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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