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17
저번 주와 이번 주는 너무 바빴다. 매주 써오던 브런치를 아예 쓰지 않고 빼먹을 만큼 말이다.
나는 주말 내내 일하면서 마음 속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이 업무강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번주 월요일에, 파트너들에게 3월부터 육아휴직을 3개월만 하겠다고 말했다(복직할 생각은 사실 거의 없었다). 비록 3개월이라고 말은 했지만, 파트너들도 내가 복직하지 않고 그대로 퇴사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로펌(적어도 내가 속한 팀)에서 육아휴직을 쓴 다음 복직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상 3월에 퇴사하겠다고 말한 셈이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은 마음이 조금 진정된 상태다. 회사와도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대신(즉, 퇴사하지 않기로 한 대신),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때부터 한 달 간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협의를 보았다.
평소 대형로펌의 업무량을 너무 가벼이 본 대가를 치른 셈이다. 다시 말해, 대형로펌에서의 '바쁨'은 사무관 시절의 ‘바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만 것이다.
사실 나는 사무관 시절 대형로펌의 업무량에 관한 평가를 들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솔직히 바빠봤자 얼마나 바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사무관도 바쁘게 일하는 직업이니, 나는 내가 대형로펌에서도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대형로펌에서 1년 간 일해본 결과 나는 내가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점도 함께.
대형로펌에 다니더라도 어떤 로펌, 어느 분야인지에 따라 업무량이 다르고 심지어 같은 로펌의 같은 분야여도 변호사마다 업무량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월 근로시간이 평달에는 약 240~260시간이고, 바쁜 달에는 300시간도 넘는다(그럼에도 우리 로펌에서 나는 업무량 상위권에 속하지 않는다).
단순히 근로시간이 긴 정도였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업무난이도도 높다는 것이다. 대형로펌에 오는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관계나 법리가 복잡하거나,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들이다. 그래서 사건을 수행할 때마다 계속 집중을 하고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근로시간의 밀도가 아주 높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월 근로시간이 300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계속 늘어나는 업무량에 순간 이성을 잃고 500ml 물병을 집어던져 내 집무실 바닥이 한바탕 물바다가 되기도 했고, 휴일에는 재택근무를 하다 이성의 끈이 뚝 끊어져 큰 소리로 쌍욕을 한 적도 있다(이 때문에 낮잠을 자던 아내가 깜짝 놀라 깨기도 했다). 사무관으로 일할 때는 거의 없었던 일이다.
물론 어떤 직장이든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바쁜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평상시의 업무량 자체가 이렇게 많은 건 견디기 어렵다. '월 근로시간 300'이 찾아오는 주기도 문제였다. 3~4개월에 한 번씩 이런 강도로 일하고 있는데, 문제는 나에게 배당되어있는 사건의 수를 고려했을 때 '월 근로시간 300'의 빈도가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만삭 상태인 아내도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힘들어하자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만류, 그리고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특히 변호사님들의 태도가 내게는 꽤 인상깊었다.
그냥 견디고 참아야 한다고, 그래야 변호사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만 했다면 나는 아마 그만뒀을 것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파트너들이 이렇게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어떤 파트너는 나에게 더 이상 사건을 배당하지 않고 직접 처리하거나 내가 수행하던 사건을 다른 변호사에게 다시 배당했으며, 어쏘 변호사들은 나와 분담해야 하는 일을 본인이 전부 처리하는 방식으로 나를 도왔다.
다른 변호사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내가 기꺼이 나서서 그 사람 일을 덜어줄 수 있을까. 선뜻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변호사님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지금은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무너졌던 정신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거나, 앞으로는 이 정도의 업무량도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다. 내가 혼자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