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5년 만에 로스쿨 입시에 뛰어들었다
지난 번에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자세히 썼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쓰지 않았다. 이번에는 로스쿨 진학을 위해 어떤 걸 준비했는지, 그리고 준비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로스쿨에 관한 글이긴 하지만, 직장인이었다가 다시 학생이 되려고 결심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실 난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로스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도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법시험이 아직 남아있었고, 설마 사법시험이 정말 폐지되겠느냐는 분위기가 만연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법시험을 준비하지 로스쿨을 준비하진 않았다. 로스쿨은 인기 있는 진로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로스쿨 입시를 굉장히 가볍게 생각했다. 로스쿨을 1곳만 지원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로스쿨은 가군과 나군, 이렇게 총 2곳 지원할 수 있다). 내가 이 생각을 동기인 D에게 말했을 때 D의 대답이 기억난다. '네 목적은 변호사 자격증인데 아무 로스쿨이나 가면 되지, 무슨 로스쿨인지는 왜 따져? 이제 사무관 출신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 대강 이런 취지의 말이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D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낀다(D는 내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조언을 해주고 있다. 다만 신원을 꼭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이 있어 D라고만 한다). 원래 목표로 했던 s 로스쿨은 보기좋게 떨어진 반면, 지원할지 그 자체를 고민하며 지원했던 k 로스쿨은 바로 합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지망 로스쿨을 s와 k로 좁히고 그에 맞춰 준비했다.
로스쿨 입시에는 크게 정량 요소와 정성 요소가 필요하다.
1. 정량 요소
정량 요소는 3가지, 그러니까 영어 성적, 학부 학점, 법학적성시험(LEET, 이하 '리트') 점수로 구성된다.
먼저 영어 성적.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는 정말 다행히도 s와 k는 모두 영어 성적이 일정 점수만 넘으면 되는 방식이었다. s는 토익 점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텝스(TEPS)를 준비했는데, 결코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로스쿨 입시에 지장은 없을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다음으로 학부 학점. 내가 학부 시절 학점을 챙긴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 학점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스쿨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내 학점 정도면 어느 로스쿨에 지원하든 합격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내가 학부를 다니던 시절에 비해 로스쿨의 인기가 아주 많이 높아져 있었다. 로스쿨은 어느새 문과에서 가장 선호되는 진로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 때부터 로스쿨을 생각하고, 로스쿨 진학에 유리하게끔 대학교와 학과를 맞추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대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로스쿨 입시용으로 학점 관리를 한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바뀌어있었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학점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들이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학점 부여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방식에 따르면, 성적 상위 50%까지 A(또는 A+), 상위 90%까지는 B(또는 B+)였다. 내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던 게 2021년 하반기이니, 다른 지원자들은 코로나19의 혜택(?)을 받은 지 이미 2년이었다. 학점이 낮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내 학점만 본다면 로스쿨 입학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로스쿨 입시는 영어 성적과 학점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법학적성시험, 리트다. 학점이 아무리 낮아도 리트 점수가 높으면 로스쿨 입학이 가능하다(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리트와 같은 적성시험류에는 강한 편이었다. 행시 때도 1차 시험인 psat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리트는 독해력을 평가하는 언어이해, 논리력을 평가하는 추리논증으로 구성된다(논술도 있기는 하지만 요식행위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psat을 볼 때도 언어논리(리트의 언어이해와 사실상 같다)와 상황판단(리트의 추리논증과 유사하지만 평가영역은 더 넓다)을 주력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리트 기출을 한 번 풀어보니 예전에 psat을 풀던 시절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퇴근 후 남는 시간과 주말을 쪼개 역대 기출을 풀고, 시험이 있던 주 금요일에는 아예 휴가를 내고 부서에는 여행을 간다고 둘러댔다. 공무원 특성상 주말에 갑자기 불려나와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리트 응시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여행을 핑계로 이번 주말에는 출근할 수 없다고 미리 선포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도 실제 리트 점수는 넉넉하게 나왔다.
2. 정성 요소
로스쿨 입시에서 정성 요소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렇지만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내용이 있는가?'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도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사무관 경력만 거의 5년이었다. 직장생활을 5년 했는데 자기소개서에 쓸 거리가 없다면 그게 더 문제다. 더욱이 s 로스쿨의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내용은 '공익을 위해 헌신해본 경험' 같은 것들이었다. 정말 오만하게도, s 로스쿨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무난히 합격하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로스쿨 합격 발표일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s가 k보다 먼저 발표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나는 s에서 1차(서류)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회상하지만 하루 정도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점이 조금, 아니 상당히 낮기는 했지만 리트 점수는 작년도 s 로스쿨 합격자 통계와 비교해볼 때도 상위권이었다. 자기소개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우 건방진 생각이지만 s로스쿨 합격을 낙관했었다. 그런데 떨어진 것이다.
그 때 나 스스로 매우 오만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변호사에 대한 강렬한 소명의식을 갖고 로스쿨을 지원했던 건 아니다. 대학 입학 전부터 로스쿨을 준비했던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오랜 기간 준비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주제에 나는 s만 지원하고 k는 아예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무관이라는 직업을 버리려고 하는 동시에, 그 직업을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사무관을 포기하는 대가를 다른 영역에서 보상받으려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을 계속 할 거라면 몰라도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이 가질 만한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이처럼 내가 오만했음을 깨달으면서도, 나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이미 사표를 어떻게 제출해야 하는지, 사표는 어떤 식으로 처리되는지 알아보고 있었다(물론 부서에 말을 했던 건 아니다). 생활비에 충당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바꾸고 있었고, 퇴직하기 전 누구에게 인사를 하고 갈지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마음이 완전히 떠나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k 로스쿨까지 떨어져 버린다면, 나는 꼼짝없이 회사를 1년 더 다녀야 한다. 아니, 1년 더 다니는 거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오히려 앞으로도 로스쿨 입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리트 점수뿐인데(학점은 바꿀 수 없고, 영어 성적은 pass or fail이니 의미가 없다), 과장을 보태면 내 리트 점수는 이미 리트 강사로 나서도 될 수준이었다. 리트 점수를 높여봐야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런 걱정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며칠 후 있던 k의 합격발표날, 나는 합격을 확인했다. 합격도 합격이었지만, 드디어 퇴직할 수 있게 됐음에 뛸듯이 기뻤다. 나에게 변호사가 될 기회를 준 k 로스쿨에도, s 로스쿨뿐 아니라 k 로스쿨에도 지원하라고 권했던 D에게 정말 고마웠다. 마음이 너무 설레고 기쁜 나머지, 부서에 말하는 걸 참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합격 발표 이후 일주일 정도,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다가 마침내 부서에 알렸다. 실제 퇴직은 인사이동 시기에 맞춰 한 달 후에 했지만 그 시점부터 이미 나는 '출가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거의 6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