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절을 넘어 대형로펌으로
로스쿨은 직업학교다. 따라서 당연히 로스쿨생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내지 개업)이다. 그중에서도 로스쿨생이 선호하는 진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검사, 로클럭(law clerk, 우리말로는 재판연구원), 빅펌(또는 대형로펌). 로클럭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텐데, 간단히 말해 '비정규직 판사'다. 이 셋을 묶어 '검클빅'이라고도 한다(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다. 빅펌 선호가 너무 강해져 '검'과 '클'을 '빅'과 나란히 놓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대형로펌 취업을 목표로 했다. 지난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싶었고, 성과도 객관적으로 측정되기를 원했다. 그 점에서 검사는 더 볼 것도 없이 내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재판연구원은 조금 고민되었지만, (대형로펌에 비하면) 낮은 연봉 때문에 역시 탈락이었다.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이 많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내가 대형로펌 취업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써보려고 한다.
'대형로펌'의 기준이 명확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5~6개 로펌을 대형로펌으로 본다. 조금 넓게 본다면 8개 정도. 내 생각에 위 로펌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모든 분야를 다 수행할 수 있다. 김앤장(김앤장 스스로는 김.장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겠다)을 예로 들어보자. 김앤장은 기업구조조정부터 인사노무, 조세, 그리고 환경까지 모든 분야를 두루 다루고 있다. 다른 대형로펌도 마찬가지다. 분야별 강약은 있을지라도, '못하는 분야'는 없다.
둘째, 주로 회사가 고객이다(B2B). 개인고객을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수임료가 높아 개인고객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 사건 중심의 YK나 대륜 같은 로펌은 매출액이 높더라도 대형로펌이라고 하지 않는다.
로스쿨생들이 대형로펌 취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봉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다른 진로보다 연봉이 최소 2배, 많게는 3배 높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서초동의 소형 로펌에서 시작한 10년차 변호사가, 대형로펌의 1년차 변호사보다 연봉이 낮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쉽게 말해 대형 로펌은 법조계의 대기업이다.
이런 대형로펌들은 특이한 방식 - '컨펌' 또는 '얼리컨펌' - 으로 신입 변호사를 채용한다. 쉽게 말하면 로스쿨 재학 중인 학생들에 대해 1) 먼저 자기소개서 등을 받고(서류 전형), 2) 서류전형 통과자를 대상으로 인턴십을 진행한 다음(다만, 다른 로펌들과 달리 김앤장은 인턴십을 하지 않고 바로 면접을 본다), 3) 최종 면접을 거쳐 채용을 내정하고, 그 학생이 로스쿨을 졸업하기까지 1~2년을 기다린 다음 입사시킨다(나 역시 1학년 2학기에 채용이 확정되고 2년이 지나서야 입사하였다).
따라서 대형로펌에 취업하려면 우선 자기소개서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나의 경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대부분 직장경력이 없으므로, 나의 사무관 경력이 그들과 나를 구별해주는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사무관 시절 1년 정도 꽤 특수한 분야의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그 업무는 대형로펌에서 다루는 분야 중 하나였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결과, 내가 지원했던 7개 로펌 중 5곳에서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턴십과 면접이었다. 지원자들의 '취업 우선순위'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인지, 대형 로펌들은 인턴십 일정을 중복되도록 한다. A 로펌이 8. 1. ~ 8. 7. 인턴십을 진행한다고 하면, 경쟁사인 B 로펌은 8. 2. ~ 8. 8.에 인턴십을 하는 식이다. 인턴십에 참여하지 않으면 면접 기회를 아예 주지 않으므로, 5개 로펌에 합격했다고 해서 5곳 모두에서 면접까지 볼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면접을 본 로펌은 3개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면접이 큰 난관이었다. 서류 전형에서는 강점이었던 나의 공무원 경력이 면접 전형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관의 질문에 변호사가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답변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보자. 행정청이 고객에게 불이익한 처분을 했다면, 고객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람직한 대처는, 위 처분에 대해서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 불복할 것인지, 그 불복절차 내에서 처분의 어떠한 점을 위법하다고 주장할 것인지, 그 밖에 고객회사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법적인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최적방안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면접장에서 나는 이런 법적 절차와 논리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처분이 왜 행해졌는지에 따라 대처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행정청의 처분은 반드시 처분 상대방이 위법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행정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보복성으로 처분을 하거나, 국회나 언론의 압박이 심해 면피성으로 처분을 하는 경우가 사실 꽤 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법적인 절차에 따르기보다는, 정치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이다.
법적인 대처수단에 더하여 위와 같은 내용들을 얘기한 것이었다면 훌륭한 답변이었겠지만, 문제는 내가 법적인 수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정치적인 해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변호사가 아닌 공무원의 답변이었다. 그렇게 나는 제일 가고 싶었던 로펌의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공무원 경력은 나를 다른 변호사들과 차별화해주는 강점이 된다. 그러나 내가 만약 공무원 시절의 관점을 유연하게 바꾸지 않고 고수한다면 오히려 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내 공무원 경력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다른 로펌에서는 면접 준비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법과 관련된 질문에서는 반드시 법적 대응책부터 답변한 뒤, 부가적으로 정치적 해법을 덧붙였다. 그 결과 내가 두 번째로 가고 싶었던 로펌(현재 근무 중인 곳)에는 합격할 수 있었다.
사실 변호사로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법보다는 정치적이거나 우회적인 대응책을 떠올리는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면접에서 탈락했던 경험을 기억해내고,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