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전 미리 알아둬야 할 로스쿨 생활
나는 2017년에 학부를 졸업했다.
그나마도 졸업하기 2년 전인 2015년부터는 행정고시 준비에만 전념했었다. 그 때부터 졸업까지는 휴학을 하거나, 휴학은 하지 않더라도 행시 준비와 병행하며 최소한의 강의만 수강했었다.
그러니까, 사실 대학을 제대로 다닌 건 2014년이 마지막이었다는 얘기다.
그랬던 내가 2022년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 헤맨 적들이 몇 번 있다. 그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긴 했지만, 직장인 출신으로서 로스쿨을 다니는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로스쿨을 다니며 느꼈던 점들을 생활적인 부분 위주로 적으려고 한다(다음 글에서는 로스쿨 졸업 후 진로 등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 또는 이미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 꼭 로스쿨이 아니더라도 다시 학생이 되고자 하는 직장인들에게 나의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내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람은, 생활적인 면에서 아래 세 가지 정도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생활비
로스쿨을 다니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등록금 때문이 아니다. 로스쿨 등록금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학자금 대출로 어느정도 해결할 수는 있다.
실질적인 문제는 생활비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한다고 가정하면, 월세를 비롯해서 전기수도와 같은 공과금, 통신비 등이 들어간다. 여기에 식비까지 고려하면 못해도 월 100만 원은 잡아야 한다. 물론 이건 직장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어차피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도 있다. 직장을 다니다보면 월급만이 아니라 알게모르게 지원받는 비용이 있는데,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내가 위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직장을 다닐 때에는 단체보험 덕분에 따로 실손보험을 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퇴직하고 나서는 따로 실손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그만큼 보험료를 추가로 지출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직장생활을 하며 굳어진 소비습관도 바로 고치기 어렵다. 가령 나는 퇴직 당시 자차가 있었고 운전만 5년을 한 상황이었다. 학생이 됐다고 해서 바로 차를 처분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다. 차량 유지비용이 별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시 학생이 되니까 생활비가 줄어들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활비는 기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계산하되, 만약 생활비를 줄인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영역에서 줄일 수 있을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로스쿨 공부
나는 사실 로스쿨 입학 전까지만 하더라도 로스쿨 3년을 '전문직시험 준비기간' 정도로 인식했었다. 그래서 적응하기 아주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행시를 공부한 경험이 있는 터라, 이번에도 비슷하겠거니 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었다. 행정고시 같은 고시(考試) 류의 공부와 로스쿨 공부(변호사시험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시험 공부는 오히려 고시류 공부와 비슷하다)는 결이 조금 다르다. 고시는 한 번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기에 장거리 마라톤 같은 공부를 해야 한다면, 로스쿨은 매 학기 학점을 산정하는 방식이기에 단거리 달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듯이 공부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 둘은 공부방법이 다르다. 고시는 누락이 없는 게 중요하다. '공부범위가 매우 넓다'고 해야 할까. 어떤 주제가 나오더라도 어느 정도 퀄리티를 갖춘 답안을 써내야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오더라도 기존 지식을 어떻게든 응용해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행시에 합격하던 해, 경제학 1문은 내가 공부해본 적도 없는 국제경제학 이론에 대한 문제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시경제학 지식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결국 풀었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로스쿨 공부는 '좁고 깊은' 공부다. 그래서 로스쿨 공부는 '내신'이라고 표현된다. 마치 고등학교처럼 교수의 강의 범위를 위주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해당 교수가 선호하는 주제, 이전에 출제했던 주제를 중심으로 공부한다. 심지어는 '복기 스터디'라는 것도 있다. 이름 그대로 교수의 강의를 그대로 녹음해서, 교수가 강의 중 어떤 내용을 강조했는지 어떤 부분을 주로 설명했는지를 분석하는 스터디다. 나에게는 너무 낯선 개념이라 복기 스터디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생각보다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로스쿨 공부는 한 마디로 '각 강의별로 교수 맞춤형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종합하면, 나처럼 다른 시험을 준비해본 경험이 있더라도 로스쿨 공부는 그런 시험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셋째, 인간관계
이 역시 나를 당황하게 한 점이었다. 나는 인간관계를 좁고 깊게 맺는 편이다. 단적인 예로, 나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한 번도 스터디를 한 적이 없었다. 스터디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도 생기고, 그에 따라 갈등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게 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공부만 충실히 해도 행시 합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실제로 문제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행시와 관련된 내 지인은 대부분 합격 이후에 만난 사람들이다.
이런 성향임에도 나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 큰 문제가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직장 내에는 '선'이라는 게 있다.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태도라고 해야 할지, 친한 듯 안 친한 듯 적당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5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며 위와 같은 인간관계 설정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로스쿨은 조금 다르다. 로스쿨 재학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k 로스쿨은 한 기수(한 학년)에 약 120명이었다. 이 정도 인원이 3년 동안 매번 같은 강의를 듣게 되면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절대다수는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학생들이다. 그래서인지 로스쿨 동기들의 말과 행동은 간혹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생각하는 '선'과 그들이 생각하는 '선'이 같지 않았던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의식적으로 혼자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과 접점을 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나조차도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로스쿨 내 인간관계를 좁히고, 그 안에서는 직장생활로 키운 사회성으로 대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음에도 갈등을 빚은 것이다.
이처럼 직장인 출신으로서 아무리 사회적 스킬을 길렀더라도 로스쿨은 언제든지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을 겪을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대학생이라도 된 것마냥 행동했다간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조언을 하자면, 로스쿨 내에서 인간관계를 넓히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경험상) 로스쿨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기들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지금까지 로스쿨의 생활적인 면을 정리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로스쿨과 그 이후 로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직장인 출신이 변호사로서 어떤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지에 대해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