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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결심했지만 아직 1년이 남았다 - 하편

퇴직을 결심한 지 1년 후, 나는 드디어 공직을 떠났다

by 사무관과 변호사

내가 속해있던 기관에서 기획조정실(이하 '기조실')은 '고시 출신이라면 사무관일 때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업무 특성 때문이었다.


기조실은 기본적으로 다른 부서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기조실에서 일하면 기관 전반의 업무를 얕게나마 다뤄볼 수 있다. 실장이나 국장이 되어서 업무를 이끌어가려면 위와 같은 경험은 필수다. 나아가 보고서를 많이 쓰다 보니 보고서 작성 실력도 키울 수 있었다. 고위공무원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승진에 유리해지는 점은 덤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무원으로 계속 남아있을 때의 장점이다. 나는 이미 법학적성시험[리트(LEET)라고도 한다]까지 보았고, 가채점 점수는 기대보다도 높은 상황이었다. 공무원 경력의 마무리를 위해 기조실에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곳에 몰입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하지는 않았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1년 전, 분애 국장님(이하 '분조장 국장님')과 함께 일한 다음부터는 '폐급' 취급을 받았다. 퇴직 결심과 무관하게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원래 일을 잘하지만, 분조장 국장님과 궁합이 맞지 않아 일시적으로 폐급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분조장 국장님이 없는 기조실에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다만 내가 일만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다. 일하는 틈틈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정말 좋아서 공무원을 계속하는 걸까?' 또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등등. 내 결심을 뒤집을 만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퇴직하고 싶다는 생각만 강해졌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내 20년 뒤 미래인 실장님이나 국장님이 부럽지 않았다.


실장, 아니 국장만 되어도 공무원 조직에서는 상위 1%다. 일단 생활이 달라진다. 넓으면서도 독립된 방이 생기고, 일정을 전담관리하기 위한 비서가 붙는다. 생활뿐만이 아니다. 국에 소속된 직원은 많으면 백 명 이상이고, 운영하는 예산 역시 조 단위를 넘는다. 만약 본부가 아닌 소속기관으로 이동이라도 한다면, 관리하는 직원이 수천 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고위공무원'의 고전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느낌이다. 이렇게만 묘사하면 마땅히 부러워해야 할 존재로 비친다.


그러나 남의 손에 직장생활, 나아가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나와 다를 게 없었다. 실장님이든 국장님이든 자신이 지금의 직위로 오게 될 줄 미리 알았던 분은 없었다(물론 이 자리에 올 것을 예상하거나 희망했을 수는 있다). 그냥 인사권자가 인사를 했고, 그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와서, 이전 실장과 국장이 하던 일을 이어서 하는 것이다.


어떤 국의 국장이 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면 모두 그럴 리 없다는 걸 알 것이다. 그렇다면 업무라도 자기 의지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역시 답은 '아니오'다. 물론 자율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법령이 엄격하게 규정한 대로, 그리고 기관장(정치인)의 관심에 따라 일해야 한다. 아무리 고위공무원이 되더라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A 정책을 추진하던 사람이, 몇 년 지나 기관장이 바뀌자 태도를 바꾸어 A 정책은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이었다고 비판하는 코미디가 벌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기조실의 실장이나 국장이 될 정도면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주체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첫 번째 글에서도 적었듯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결정짓는 게 싫어서 퇴직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이 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직장 내 대우가 좋아져 봤자 의미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실장님이나 국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둘째, 내가 '업무의 의미'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퇴직한 사람들의 글을 보면, 업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퇴직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사무관 1~2년 차까지는 내가 맡은 업무가 어떻게 공익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익' 같은 추상적이면서도 대단한 가치를 좇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조직의 업무에 기여하고 내가 인정받는 것에서 직장생활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일반적인'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기조실에서 일하던 어느 날, 기관장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부서는 기관장의 지시를 이행하느라 소위 '갈려나가고' 있었는데 기관장이 격려차 밥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식사 도중 정치인 출신이었던 기관장은 과거 자신이 추진했었던 D 사업에 대해 말했다. D 사업은 시작부터 반대가 심했고,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저주 섞인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우수 사례로 꼽힌다. 요약하면, 자신이 무수한 반대를 극복하고 결국 D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기관장이 D 사업의 성공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본 것은 없다. D 사업으로 수혜를 본 건 일반 국민들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기관장에게 감사해하나? 아니, 누가 D 사업을 추진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즉, 기관장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보상도 없고(선거에 도움이 됐을 수는 있다), 누구도 인정하거나 칭찬해주지 않았지만(오히려 '욕을 먹는다'),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한 것이다.


바람직한 삶의 자세다. 그러나 소시민인 나에게는 버거웠다. 나는 어떠한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거나, 최소한 외부의 칭찬이나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만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보상받거나 인정받기 어렵다. 공무원의 일은, 그러니까 정책은,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비판 받는다. 이해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잘된다고 해서 보상도 인정도 주지 않는다. 그 대신 결과가 잘못되면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


(출처는 충주시의 73줄짜리 악플 읽기 유튜브 영상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매우 많이 일어난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몇 년 전 새롭게 기획한 일로 예산을 (많게는) 700억 원 정도 절감한 적이 있었다. 적극행정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보상받은 건 따로 없다. 그 당시 나를 믿고 지지해 주던 실장님이 백화점 상품권을 50만 원 정도 따로 챙겨주고, 역시 나를 많이 지원해주셨던 당시 과장님이 실 내 인사평가에서 나를 밀어주어 연 단위 성과급을 동기에 비해 200만 원 정도 많이 받았다는 것 말고는. 생소한 분야임에도 적극적으로 그 업무를 맡아 담당해 주셨던 주무관님, 그리고 내가 인사이동한 다음 후임으로 온 팀장님 역시 고생만 했지 별로 보상받지는 못했다.


그 당시에는 거기에 큰 불만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이 조직에 몸 담고 있지 않았다면 시작도 못할 일이었고,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고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영원히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건 다른 문제다. 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상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자기만족뿐이다. 그러나 소시민인 나는 그 기관장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공직을 떠났다. 퇴직은 간단했다. 상사들에게 퇴직의사를 밝힌 다음 징계나 형사처벌받을 사유는 없는지 신원조회를 거친 게 전부였다. 내 공무원 생활 5년, 간절히 공부하던 시기까지 합치면 약 7년의 시간이 끝났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면 공무원으로 일했던 기간은 나에게 많은 걸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행되는지, 공무원 조직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등등. 그러나 공무원 생활 중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공무원 생활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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