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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

퇴직을 결심하고, 실제로 퇴직하기까지

by 사무관과 변호사

저번 글에 썼듯이 나는 이미 2020년 하반기에 퇴직(공무원식 표현으로는 의원면직)을 결심했다. 그러나 퇴직을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글은 그 고민과 나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퇴직한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나도 종종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꿈꿔보곤 했지만,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지면서 계획을 세워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장 막막한 것은 생계였다. 내가 모아놓은 돈의 수준으로는 월급이 끊기면 2년도 못 버틸 게 뻔했다.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계가 급하다고 해서 아무 직업이나 가질 수는 없었다.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려는 이유는 내가 나의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직업도 마찬가지라면 공무원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 따라서 나의 새로운 직업은 주체적인 커리어 설계가 가능한 직업이어야만 했다. 과연 어떤 직업이 그런 직업인가?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업무가 독립적이고,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으면서, 전문적인 직업'이었다. 다시 말하면, 타인의 주관적인 인정 여부에 나의 커리어가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는 직업이다.


몇 년 간의 공무원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공무원 역시 승진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반적으로 공무원은 승진하려면 주요 보직을 거쳐야 한다. 위와 같은 주요 보직을 '승진 자리'라고도 부르는데, 승진 자리로 가게 되면 보통 실이나 국의 업무를 모두 관리하게 된다(사무관 기준). 특정한 정책을 맡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당 실이나 국의 정책들을 모두 얕게나마 아는 상태에서, 추진상태가 미진한 정책이 있으면 지원하고, 실국 전체 예산이나 인사를 챙기며, 언론이나 국회에 대한 대응도 한다.


내가 이렇게 승진 자리의 업무를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승진 자리가 어려운 자리라고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승진 자리는 힘들긴 하지만 '쉬운' 자리다.


여기까지 읽은 공무원들은 대부분 어이없어할 것이다. '아니, 너가 승진 자리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승진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데, 무슨 근거로 쉬운 자리라고 해?' 등등. 실제로 승진 자리에서 일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는 공무원도 종종 있으니, 나도 내 말이 공무원들에게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승진 자리가 '쉬운' 자리라고 말한 것은 승진 자리의 업무특성 때문이다. 승진 자리의 업무는, 비유하자면, 쉬지 않고 5km를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쉬지 않고 5km 뛰는 것은 다르다. 보면 알겠지만, 러닝 초보자가 중간에 휴식 없이 5km를 내리 달리는 것은 몹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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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들여 연습한다면 누구나 5km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리를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 할테고, 땀도 많이 날 것이며, 자칫하면 다리를 다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러닝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5km 달리기는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특별한 경험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승진하고 싶은, 그러니까 승진 자리로 가고 싶은 공무원은 무엇을 갖추면 될까? 업무 관련 경험? 전문성? 기술? 모두 아니다. 승진 자리의 업무는 누가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상사의 지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이행하는지, 그리고 상사의 기분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와 같이 '상사에 대한 적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공무원의 승진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듯 보이겠지만, 나는 공직사회의 조직구조나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대규모 조직을 관료제로 운영하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문제다. 대규모 조직이 어느 한 개인의 존재 여부에 좌우될 수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중요한 업무라도 다른 사람이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 궁극적인 결과가 바로 위의 '승진 자리'다. 조직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이다. 이렇게 되면 직장생활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나의 상사'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직장 생활의 성패는 승진으로 설명되는데, 승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상사니까. 그렇게 나의 생각은 사라지고 상사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대체하게 된다. 상사의 업무 스타일이 곧 나의 업무 스타일이 되고, 상사의 취향이 바로 나의 취향이 된다. 내가 아닌 남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


(오해할까봐 거듭 말하지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뿐, 상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일부를 제외하면 다들 능력도 탁월했고, 인품도 훌륭했으며, 배울 점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결국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의 주도권을 맡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이 아닌 내가 직장생활의 중심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나름의 답은 세 가지를 갖춘 직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독립성. 나 혼자서 업무를 수행해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조직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관료제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직이 생겨나지 않거나, 조직이 생기더라도 작고 유연한 조직이 주가 되려면, 업무가 독립성을 가져야 했다.


둘째, 성과의 측정가능성.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했다. 앞서 나는 조직에 소속되는 걸 피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나도 어떠한 형태로든 조직에 몸을 담게 될텐데, 내가 조직 안에서 협상력을 가지려면(즉, 상사에게 종속되지 않으려면) 나의 성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했다. 당연히 성과를 모두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객관적인 평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셋째, 전문성. 업무가 독립적이고, 성과가 측정 가능하더라도, 전문성이 없다면 언제라도 조직 외부 사람으로 나를 대체할 수 있다. 배달업을 생각해보자. 배달은 혼자서 하는 일이니 독립적이다. 배달 건수 역시 숫자로 나오니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특별한 경험이나 기술은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즉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


위 세 가지를 고려해서 내가 선택한 직업은 변호사였다. 변호사는 혼자서도 일할 수 있으니 당연히 업무에 독립성이 있다. 승소든 패소든 성과 역시 명확하다. 전문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은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퇴직을 하기까지는 1년,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4년도 더 넘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예상하겠지만 그 기간은 순탄하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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