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 출신 사무관이 5년만에 의원면직하기까지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 너무 고생하시지 않았어요? 근데 왜 그만두셨나요?"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직업 아니었나요?" 등등. 처음엔 내가 그만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이 세 자리 수를 넘어갈 때쯤 나도 지쳐서 설명하는 걸 그만두었다. 대신 "사무관이라고 해봐야 직장인일 뿐이고, 직장인의 한계를 느꼈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끝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왜 그만두었는지 그 이유를 점점 잊게 되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새출발을 하는 지금, 내가 왜 그만두었는지 기록하지 않으면 정말 잊어버리고 말 것 같아 글을 쓴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겪어봤을 것이다. "이 직장, 꼭 그만두고 말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다음 날 직장 동료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져버린 경험. 그만둘까 생각이 들어도 "이런 직장이 또 없지"하면서 안주하게 되는 마음. 나 역시 어떤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020년 하반기, 인사이동을 신청했었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서로 발령되었다. 정책설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수집, 관리하고 분석하는 부서였는데, 그 부서 내에서도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의 팀장으로 발령난 것이다.
팀원 5명은 모두 전산직 공무원. 그 중 3명은 코딩만 전문으로 해온 전문임기제 공무원들이었다. 부서장인 과장님도 공직 외부에서 채용된 IT 전문가, 내 전임 팀장님도 전산직 공무원이었다. 코딩의 '코'자도 모르고, 컴퓨터 포맷도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간신히 하는 내가 갈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국장님이 나를 콕 찍어 발령해 달라고 한 것이었다. '국어를 잘하면 수학을 잘하듯이, 고시 출신이니 코딩도 금방 이해하고 파악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고 한다.
그 국장님이 '김 팀장은 국어를 잘한다'고 인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장님은 1년 전쯤 나와 함께 2개월 정도 일을 했었는데 그 때 나를 일을 잘한다며 눈여겨본 것이다. 나에게는 참 불행한 일이었다.
보통 상사에게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게 되면 직장생활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 국장님은 좀 달랐다. 그 분께 인정받으면 직장생활이 더 고달퍼진다고 해야 하나. 그 분은 직장 내에서 유명한 '전출, 퇴직 제조기'였는데, 그 분이 국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돌면 직원들이 우르르 휴직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분이었다. 폭언과 욕설은 기본, 가끔씩 직원들에게 손찌검도 하는데 신기하게 승진에서 누락된 적은 없었다.
아무튼 공무원이 별 수 있나, 인사발령이 났으면 그 자리에 맞게 일해야 하는 법. 더구나 나는 아직 그 국장님의 실체를 몰랐기에 국장님께 업무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내가 코딩은 몰라도 보고서는 어느정도 쓰니, 일단은 팀원들이 분석해준 원자료를 상사들이 보기좋게 보고서로 가공하자고 생각했다. 인사발령이 있고 난 며칠 후 기관 내 실장과 국장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가 잡혔다. 우리 팀은 국장님이 발표할 보고자료를 준비하게 됐다. 국장님께 보고드리기 전날, 새벽까지 글자 하나하나, 자간 하나하나 수정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국장님 보고결과는?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국장님은 이 보고서로는 너무 창피해서 실국장 회의를 갈 수 없으니 당장 다시 작성하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고는 보고서를 찢어 나에게 집어던졌다. 알고보니 국장님이 원하는 보고서 양식이 따로 있었다. 그 양식을 맞추지 않았으니 국장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전임 팀장이 컴퓨터를 포맷하고 가버려서 내가 알지 못했던 양식이었다. (아직도 그 팀장님이 왜 포맷을 하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공무원이 인수인계 없는 걸로 유명하다지만 일반적으로 컴퓨터까지 포맷하진 않는다)
과장님(공무원 사회에서는 과장이 팀장보다 높다)과 팀원들 모두 양식은 바뀌었더라도 내용은 괜찮으니 국장님이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행시로 들어온 팀장은 경력에 비해 직급이 높으니 고생 좀 해봐야한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침묵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주변에서 자발적으로 날 돕기에는 내 인덕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과장님과 팀원들은 "당신이 얼마나 노력하든 결과는 어차피 똑같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당신이 한 번 해보고 싶은대로 해봐라. 결국 당신도 우리처럼 될테니까"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인사발령난 직후였던 나와 달리 과장님과 팀원들은 이미 국장님의 폭력에 6개월 이상 노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상태에 빠져있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과장님과 팀원들 모두 열심히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국장님의 비난뿐이었으니, 결국 더 노력하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국장님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단순히 혼나서가 아니다. 인사이동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삽시간에 '폐급'이 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1~2년차 때의 나는 폐급이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4년차 아닌가. 4년차 팀장이면 이제 중참 소리를 듣는다. 중참 팀장인데도 국장님이 보고서를 찢어서 던져버릴 정도로 일을 못한다는 평가는 나에겐 치욕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누구나 할법한, 그러나 그 시점에 한해서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더 잘, 열심히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악순환 속으로 빠져버렸다.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물에 대한 국장님의 반응은 언제나 폭언과 욕설, 또는 냉소였다. 거기에 위축된 나는 국장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일했고, 그렇게 업무 자율성이 제한된 상태에서 나온 결과물에 대해 국장님은 또 비난을 퍼붓기 일쑤였다. 나 역시 과장님과 팀원들처럼 점점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의욕을 완전히 잃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국장님과 팀원 사이에 있었던 말다툼이었다. 국장 보고를 했던 그 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국장님은 나와 내 팀원에게 거친 말을 쏟아내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그 대상이 (나와 내 팀원이 아닌)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이었다. 돌려서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재택근무는 노는 것과 다름없고, 자신은 노는 직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국장님은 그런 상황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늘상 있는 일이었다.
평소와 달랐던 건 팀원이었다. 팀원은 국장님의 '뒷담화'를 참지 않았다. 그는 국장님에게 매섭게 반격했다. '지침에 따라서 교대로 재택근무하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 직원들 대부분 대면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재택근무도 취소하고 출근한다, 재택근무를 하면 노는 것과 다름 없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이냐' 등등. 합리적인 말이긴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 팀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겉으로는 "네, 네, 국장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그 뒤로는 난장판이었다.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둘 사이에서 큰 소리가 오가길 10분쯤 지났을까. 국장님이 우리 둘을 국장실 밖으로 내쫓고 나서야 다툼은 끝이 났다. 나는 국장님을 욕하는 팀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휴직을 생각했다. 행정직이자 직업공무원 출신인 국장님과 코딩 전문가이자 임기제 공무원인 팀원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나의 결심이 완전히 헛된 것이라는 걸 깨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조직 내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 민간기업에 비해 비교적 휴직이 자유롭긴 하지만 여기도 직장인 만큼 허투루 휴직을 시켜주지는 않는다. 유급휴직은 더욱더. 당시 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육아휴직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국장님 때문에 우울감과 좌절감에 젖어있긴 했지만 휴직이 필요한 만큼 정신적으로 아픈 상황도 아니었다. 무급휴직을 하기에는 당장 생활비가 막막했다. 무엇보다도, '고시 출신' '젊은 남자'가 피치 못할 사정 없이 휴직한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될 직장 내 경력의 단절과 평판의 추락이 걱정되었다. 결국 나는 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그 대신 나는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로 돌리기로 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이 상황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 어떻게 보면 '깨달음'이기도 하고 '정신승리'이기도 한 이 발상 이후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이 상황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으려면 일단 내가 왜 이 상황을 괴롭다고 생각하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계속 폭언에 노출돼서? 이것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생각을 여기에서 멈춘다면 그저 정신수양하듯이 폭언을 폭언이 아니라고 받아들이자는 결론밖에 없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결론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 고민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가 판단한 내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내 인생이 남의 손에 좌지우지됨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내가 국장님을 바꿀 수 있는가? 없다. 국장님을 다른 국으로 발령낼 수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인사이동할 수 있는가? 없다. 이건 전적으로 (국장님을 포함한) 인사권자의 뜻에 달려 있었다. 내가 휴직할 수 있는가? 없다. 휴직 사유도 뚜렷이 없을 뿐더러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휴직 여부를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인사과의 권한이었다.
생각은 계속 뻗어나갔다. 애초에 내가 이 부서에 발령된 것에 내 의지가 고려되었나? 전혀 아니었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순전히 인사권자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국장님이 그랬듯이, 그 과정에서 나의 흥미와 관심사, 그간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내가 승진하면 이 상황이 달라질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당장 나의 20년 뒤 미래인 국장들도 인사발령이 나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내가 공무원으로서 승진을 계속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할지는 내가 '전혀' 결정할 수 없었다. 즉, '앞으로 남은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 나는 내 일에 대해 어떠한 식으로든 주체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퇴직뿐이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내가 주체적으로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했다.
누군가는 직장인인 이상 남의 손에 내 인생이 결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그나마 고시 출신 공무원은 조직 내 지위도 높고 직업이 안정적인데다 공무원치고는 연봉도 높으니 만족하고 다니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게 그런 조언을 한 주변 사람들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때문에 내가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고 난 이후에도 실제로 퇴직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이 글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가 왜 그만두었는지 이제는 나 스스로 어느정도 정리된 것 같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 때문에 퇴직을 망설였는지, 퇴직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퇴직 후의 삶은 어땠는지는 다음에 쓰려고 한다. 내 새로운 직업인 변호사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쓸 기회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