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레이션, 진심이 닿는 구조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다, 무엇을 함께 느꼈는지

by 석희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콜라보란 정말 ‘같이(함께)’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각자의 것을 나란히 놓는 데 그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콜라보라고 불리는 작업물이 너무 많다.

그래서일까, ‘콜라보’라는 말이 점점 피로하게 느껴지거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일본에는 ‘와카(和歌)’라는 정형시가 있고,

그걸 윗구와 아랫구로 나누어 두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렌가(連歌)’라는 형식이 있다고 한다.

다섯 구절로 이루어진 시.

한 사람이 먼저 윗부분인 5·7·5를 짓고,

그걸 읽은 다른 사람이 거기서 영감을 받아 7·7로 마무리하는 구조다.


그 설명을 처음 봤을 때,

이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피처링(featuring)’도, ‘콜라보레이션’ 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겠지만

한 사람이 던진 감정과 리듬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받아 적어 함께 완성해 가는 구조는

지금의 협업보다도 더 본질적인 ‘Collaboration’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문득문득,

‘콜라보’라는 단어가 요즘엔 너무 가볍게, 자주 쓰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란

각자가 가진 기술이나 이미지, 언어를 결합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된 분모’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분모가 없다면,

형식적으로는 ‘콜라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정작 결과물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의 결이 맞지 않을 때,

오히려 ‘콜라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어색해질 정도로.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각자 제 갈 길을 걸으며, 같은 리듬의 3구(5·7·5)를 쌓아가는 관계가 있다면

굳이 ‘콜라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이미 그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이어질 2구(7·7)의 여지가 생겨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은 그 의미를 다시 꺼내어 바라보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 본다.


한국 역사에도 일본의 ‘렌가(連歌)’처럼 **문답가(問答歌)**의 전통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과서에도 실린,

조선의 이방원과 고려의 정몽주가 주고받은 시조 —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방원은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먼저 하여가를 읊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뜻을 함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시로 말을 건넨 것이다.


그에 대한 정몽주의 응답은 단호했다.

“내 붉은 마음은 한 번 정하면 바뀌지 않는다.”

죽음을 앞두고도 신념을 꺾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그리고 그 시는 곧 현실이 되었다.

정몽주는,

그 시조를 남긴 직후 개성 ‘선죽교(善竹橋)‘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철퇴를 맞고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선명한 장면처럼 남아 있다.


단순한 시의 교환이 아니었다.

그건 한 시대의 가치와 철학, 충절과 권력, 이상과 현실이 부딪힌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권력의 언어로 설득했고,

다른 누군가는 신념의 언어로 버텼다.


렌가처럼, 이방원이 먼저 윗구를 던지고

정몽주가 아랫구로 응답한 셈이다.

비록 둘의 시는 형식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만,

그 구조와 긴장감은 마치 하나의 시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이것 또한 아주 강렬한 형태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심이 충돌하고, 그 충돌이 응답이 되고,

그 응답이 하나의 서사가 되는 방식. 마지막으로 그것은 어떠한 ‘장면‘으로 남는다.


비슷한 감정을 요즘은 Street Woman Fighter를 보며 느낀다.

포맷은 경연대회(배틀)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를 겨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남는 건,

그 무대에서 누가 몇 점을 받았는지, 누가 이겼는지가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던 어떤 순간, 어떤 장면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기록되지 않아도 기억된다.


누가 더 테크니컬 했느냐보다,

그 사람의 춤에 인생이 실려 있었는가,

그 무브에 서사가 담겨 있었는가,

관객들의 심장을 흔들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때가 많다…)

그게 기억의 잔향으로 남는다.


그런 장면을 보면 생각한다.

콜라보란 결국, ‘응답할 만한 진심’을 마주하고, 그에 응답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브랜드들도 요즘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한다.

하지만 가끔은, 각자의 로고만 가져다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는 작업도 있다.

겉으로는 협업이지만, 안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럴 때면 다시금 렌가를 떠올린다.

콜라보는 단순히 둘이 모인다는 말이 아니라,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고,

그 말을 듣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엔 ‘진정성’이 담겨야만 비로소 함께 만든 무언가가 된다.


콜라보는 결국, 장면으로 남는다.

그 장면은 오래 기억되고, 누군가의 마음에 붙잡힌다.

그 장면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건

형식도, 유명세도 아니다.


진심.

그리고 그 진심에 대한 응답.


렌가처럼.

단심가와 하여가처럼.

무대 위 한순간의 움직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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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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