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이라는 단어에 대한 작은 깨달음

효율이라는 말이 불편했던 나에게

by 석희

최근까지 나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무언가를 설명하며 늘 이렇게 시작하곤 했다.

“효율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진 않지만…”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왠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기분이 들었다.

정형화된 도식, 기계적인 반복.

’ 효율적’이라는 말 뒤에 깃든 차가운 질서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말에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효율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 단어는 만들어졌을까?’

혹시 내가 이 단어를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해 왔던 건 아닐까?



지금의 나는 효율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정수’라고.

마치 스시 장인이 수천 번, 수만 번 밥알을 쥐며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진짜 효율은 단순한 속도나 절차의 최적화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 끝에 도달한 최적의 감각,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해 낸 숙련의 구조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반드시 ‘자신이’ 직접 겪어야 한다는 것.


남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표면적인 흉내에 그칠 뿐,

그 안에 진짜 이해가 없다면

그것은 결국 내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 이야기를 들으며

이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지금까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해 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연주 스타일을 따르곤 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완성도 높고,

효율적인 해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임윤찬은 달랐다.

그는 단지 다른 사람의 연주라서 ‘비슷하지만 다르게’ 연주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았기 때문에 ’ 색 다르게 ‘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천 번, 수만 번

마치 자신이 라흐마니노프가 된 것처럼

왜 이 멜로디가 필요했는지, 왜 이 리듬을 택했는지,

스스로 묻고 해석하며

그만의 방식으로 다시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다행이다.

이제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편안하게,

그리고 나만의 언어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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