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개똥벌레였을 뿐

8화

by 희지

동생이 사춘기가 와서인지

등교 준비하는 시간은 늘 전쟁터였다

엄마와 동생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그 장면이 괴로워 외면한 채

자주 눈물을 훔친 뒤 등굣길로 향하곤 했다


내 두 눈은 늘 퉁퉁 부어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퉁퉁 부은

내 두 눈에 대해 물어주는 벗은 없었다

가족조차 각자 바쁘고 각자 힘든 삶을

버티어내며 영위하고 있었기에

나의 벗이었던 이들도 모두

각자의 삶만 살아내고 있었을 테니까

중1 그 나이대는 자신밖에 모르는 나이였을 테니까

치열한 경쟁에 서로서로 견제만 해야 했던 환경에서

누군가의 아픔에 신경 써주고

싶었을 이는 없었을 테니까

‘그래 그럴 수 있지’하며

나 또한 나의 삶을 철저하게 숨겼다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었을까

도움을 청해서 도와줬고

고민이 있다고 해서 진심으로 함께했고

준비물이 없다고 해서 늘 나의 것을 나누어주었고

여름에는 에어컨 바로 밑에 자리인

내 책상 위를 기꺼이 신발을

신은 발을 밟고 올라가게 해 줬다

그저 소리 없이 물티슈로 내 책상을 닦아내었다

말이 없는 이는 투명 인간일 뿐이었다

어떤 말이든 함부로 내뱉어도

돌아오는 숨소리조차 없었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도 손가락

끝 하나도 까닥하지 않는 이었는데

누구든 쉽게 무시하기 딱

좋은 타깃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함부로 해도 돌아가는 메아리조차 없어

무시해도 되는 이가 나였다

나는 에어컨이 너무 추웠고

그 아이들은 에어컨이 필요했다

나는 뜨거운 햇볕에 있어도 군말 하나 없었고

그 아이들은 너도나도 그늘로 투덜대며

그늘로 피신하자고 했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것을 할 수 없었고

내 끄덕 한 번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 아이들은 이곳저곳 내 필통을

마구 뒤져 연필 가위 지우개 등을 가져갔다

나는 가족들이 좋았고

그 아이들은 가족들을 싫어할 나이가 되어있었다

나와 그 아이들의 사춘기는 달랐다

나는 참았고 그 아이들은 내뱉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 참을 수밖에 없었고

내뱉을 수 있었다고 써야 할까

진심으로 만든 내 생일 초대장을 돌릴 때

그 아이들은 서로 뭉치고 어울려

음식만 얻어먹고 올 생각만 했다

선물은 아무거나 줘도 되고 안 줘도 된다는 표정으로 해치우듯 웃음으로 당연한 듯 무마했다

체육복을 빌려달라는 여자애에게

당연하듯 체육복을 빌려주곤 했고

과자를 한 봉지를 가져오면 너도나도 나에게 다가오며

나의 끄덕 한 번이면 손가락을 마구 집어넣곤 했다

우울과 무기력 증세에 제대로 씻지 못한 채

학교에 가는 날이 잦아졌다

하지만 내 벗들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저 자기 머리 고데기 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저 자기 얼굴에 쓸 ‘화장품을 무얼 사면 좋을까’

에만 관심이 많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내 앞에선 킁킁대며

“어디서 이상한 냄새나지 않아?”라며

어떤 여자애가 깔깔대며 웃으며 지나갔다

아직도 그 표정과 웃음소리가 기억난다

벗이었던 애가 왕따 당하던

다른 반 여자애에 대해 언급하며

“걔는 씻지도 않는대!”

나는 뜨끔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유가 있겠지! 걔만의 사정이 있겠지”

그 애는 당황한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진작가가 꿈이라던 남학생은

집으로 하교하는 나를 교실에서 함부로 찍어

자기 친구들과 잔뜩 모여 앉아 킥킥대며 웃어댔다

어떤 여자애가 말했다

“희지야 이거 내가 지우라고 할게! 얼른 가”

그 말을 당연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냥 피곤했기에 얼른 집으로 향했다

과연 지웠을지 내가 교실에서 나간 뒤에 자기들끼리

내 사진을 보며 돌려가며 비웃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체육 선생님이 꿈이라던 남학생은 나의 체육 시간을 공포의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두 학생 모두 같은 남학생이다

마지막으로 sns에서 본 걔의 계정엔

@유명대 가 태그 되어 있었고

체육 선생님을 꿈을 목표로

유명한 체대를 다니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름이 특이하고

누구나 다 아는 대학에 다니기에

신상정보를 다 공개해버리고 싶기도 하다)

체육 시간은 나에겐 늘 공포의 시간이었다

축구하는 방법이나 야구 룰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늘 서툴렀다

벌벌 떨고 눈치 보며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늘 뒤에서 수근 거리는 남학생들의

비웃음과 욕을 들어야만 했다

어느 날은 체육 시간에 두 팀으로

나누어져 이어달리기를 하는 수업 시간이었다

어떤 여학생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그 여학생이

엉성하게 뛰는 나를 앞질러갈 때

나를 향해 지은 비웃음은 아직도 상처로 남았다

분명 뛰기 전에 자기 친구들과 와서

“희지는 달리기 잘하지? 나는 너보단 못 뛸것 같아..”

하며 비꼬며 내숭을 떨었기 때문이다

더 큰 상처는 당시 벗이었던

여학생이 전달한 말이었다

“희지야 남자애들이 다 너 왜 저렇게 뛰냐고

유희지 왜 저러냐고 욕하는데?”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늘진 돌계단에 앉아 표정이 안 좋은 채로

나에 대해 수근 대거나 욕하거나 발길질을 하며

화를 내던 남학생들 얼굴이 보였다

나 때문에 졌을 확률이 올라갔을 테니

나의 달리기 엉성한 달리기 자세를 비웃을만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뛰는 건 여전히 공포스러운 행동이

되어버렸기에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이었다

밖에서 뛰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지금은 예전보단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버스를 잡으러 가야 하거나

횡단보도를 빠르게 뛰어가야 할 때

엄청난 용기를 내야 겨우 뛸 수 있다


내 소원은 집 앞 공원이나 밖에서

비웃음 당할까 봐 눈치 보지 않으며

편하게 걷고 조깅이나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이 학생은 미술 시간도 나를 공포에 떨게 해 주었다

선생님을 꿈꾸는 이 남학생은 내가 그림만 그리면

옆에 친구와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댔고

수업 시간만 되면 꼭 떠들어 벌로

그 팀 모두에게 남아서 빗자루질을 시켰는데

그 빗자루질은 말 한마디도 안 한

내가 항상 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냥 선생님 말은

무시한 채로 교실로 빠르게 뛰어갔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던 다른 남학생 이야기다

아주 많았지만 특히나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저 수업 시간에 밀린 수학 숙제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뭐 하냐? 응~?” 하며

긴장 상태에 못 움직이는

나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아주 집요하게 괴롭혀댔다

내가 목을 겨우 부여잡고 칠판을 바라보려고

몸을 돌리면 몸이 덜덜 떨리곤 했는데

그 틈을 타 저 뒤에서 다른 여학생들과 나를

“장애인 새끼”라고 하며 비웃곤 했다

이렇게 학교생활은 나에게 도망칠 곳 하나

없었던 말할 곳 하나 없었던 지옥의 시간이었다

집도 학교도 학원도 어느 한 곳도 편안한 곳이 없었다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시간은

학교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밤 9시, 10시에 걷는 집에 가는 저녁 길이었다

그때부터 산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아무도 건드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마주칠 이도 없었다

그저 밤공기가 나를 위로해 줄 뿐이었다

친구보다 가족보다 더 나았던 짧은 10분도 남짓한 길

그 길을 걷는 시간이 나에겐

숨 한 번 트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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