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은퇴야! 이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이제 여행도 갈 수 있어! 어디로든 떠날까? 지금?
사랑을 한다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꿈꾸는 것에 가장 가까운 영화 [어바웃 타임]은 모든 순간을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 참 좋은 영화다. 사랑과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이 영화가 나는 참 좋다.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 팀은 메리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한순간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일 뿐이다. 메리의 눈엔 초라해 보이는 옷과 머리 색인데도 팀의 눈엔 그저 예쁘게 보인다. 사랑은 그렇다. '당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을 뿐이다. '당신'이기 때문에 그저 다 괜찮을 뿐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엔 비바람이 몰아친다. 엉망이 되어버린 결혼식인데도 팀과 메리에겐 그저 웃음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는 그 순간이, 그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팀은 결혼 후에도 시간여행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멈추게 된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무언가를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을 온전히, 충분히 사랑하며 삶의 시간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We are all travel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인생은 혼자든 둘이든 '지금'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최근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는데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6년을 거주했었다. 그리고 6년 동안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서는 사망 소식이 두 번 있었다. 아찔할 만큼 높은 빌딩이 빼곡히 들어선 곳에서 누군가는 삶에 지쳐 뛰어내렸고, 오토바이로 열심히 배달 중이던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한 아이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커다란 트럭에 목숨을 잃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십여 년 전 큰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화장터를 처음 가봤던 것 같다. 화장터는 칸이 나누어져 있었고 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유리로 된 창과 그 위에 고인의 사진이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화장을 하는 동안 가족들은 휴게실에서 기다리게 되는데 칸마다 걸려 있는 고인의 사진들을 보며 휴게실로 향하던 중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었다. 너무도 어린아이의 사진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벼랑 끝에 내몰린 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사고의 형태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죽음이라는 것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생각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꼭 거창하게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내 마음의 소리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모두 충분히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삶일 테지만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너무나도 많은 어쩔 수 없는 무거운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그 안에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번 더 표현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될 수도 있겠고, 다 큰 어른이지만 신나게 비 맞으며 뛰어놀고 싶다와 같이 엉뚱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생각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일수도 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다 다르고,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아낼 수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이 허무함 뿐이라면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럽지 않은가? 그러니 부디 나의'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지금'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삶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지금'이 아닌 우리의'지금'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었다면 생의 마지막 즈음에 나에게 남는 것이 허무와 아쉬운 마음일리는 없지 않을까.
인생은 온전한 육신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무덤으로 향하는 여정이 아니다. 연료를 소진할 때까지 질주하다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후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어야 한다."와 정말 끝내주는 여행이었어!" - 헌터 톰슨의 [오만의 고속도로] -
내 인생의 모토로 삼은 문장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다. 그러니 최고의 짝꿍을 만나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중요하다. 학벌, 집안, 경제력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서로의 이상함이 꼭 맞아떨어지는 사람.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 서로에게서 답을 찾는 일이 아닌, 서로의 서툰 오답을 품어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런 사람과 신나게 살아낸 생의 순간들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다가 떠오른 드라마가 있다. 역시나 내가 너무도 존경하는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 이렇게 멋진 배우님들을 하나의 장면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작품이다. 사랑스러운 황혼 청춘들의 이야기. 자신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열심히 살지만 마음과 같이 살아지지는 않는다. 그 모든 가장 사람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드라마였다.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미루기엔...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도 찰나와 같다. 때문에 마음껏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배우자의 죽음 뒤 찾아온 치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 그녀의 삶에 찾아온 암,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행복하고 벅차던 순간에 일어난 교통사고, 자랑스러워하던 돈 잘 버는 사위가 딸에게 저질러온 폭력 등 알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에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것들을 겪어온 그들. 그들은 여전히 서툴지만, 여전히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낸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어서 무어라 표현하기도 어렵다. 드라마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인생은 그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들 애쓰며 산다. 황혼의 그들을 보면 젊은 시절이 상상되지 않고 그저 처음부터 어른이었을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들도 애쓰고 버티며 그리고 순간순간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알알히 누리며 그 시절들을 지나 황혼까지 온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삶을 그들은 여전히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살아낼 뿐이다.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 유명한 사진작가에게 우연히 영정사진을 찍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고두심 배우님의 딸 역할로 나오셨던 고현정 배우님(극 중 박완)의 대사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우리 모두 시한부다. 처음으로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자신들의 영정 사진을 재미 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밭일은 해야 한다는 내 할머니, 우리는 모두 시한부. 나중에 희자이모에게 물었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왜 화장도 안 하고 사진을 찍었냐고. 희자이모가 말했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바로 이 순간이 자신들에게 가장 젊은 한때더라고." - [디어 마이 프렌즈] 완의 대사 -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여유 부리지 말자. 한 번뿐인 인생이니 대단히 멋진 무언가를 이뤄내자는 말이 아니다. 내 마음에 충실히, 후회 없이 순간을 마주하자는 뜻이다. 이미 모두 충분히 애쓰고 있는 삶이지만, 내 마음에 조금만 더 솔직하게, 내가 나를 위해주는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인 거다. 세상에 못난 인생은 없다. 엉망이고 보잘것없는 인생이란 건 없다. 우린 모두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그 누구의 인생도 쉬이 평가될 순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일 뿐이다. 그저 각자의 시간과 순간일 뿐이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왜 나는 지금껏 그들이 끝없이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지난날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어차피 처음에 왔던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 길도 초라하지 않게 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너무도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다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좀 더 오래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가길...
- [디어 마이 프렌즈] 완의 대사 -
글을 쓰다가 문득 삶의 소중한 순간에서 나는 미래의 그와 무엇이 하고 싶은가를 상상해 보았다. 사실 나는 프로 상상러다. 우연히 마주한 작은 순간에도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것들이 수많은 상상의 가지들로 퍼져 나가길래 애써 추리고 추려 보았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함께 단기 사업을 기획해 보는 것이다. 서로 사업 보고서를 써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거다. 사업 보고서는 세부 계획과 일정, 레퍼런스 등 서로를 강하게 설득시킬 만한 내용으로 알차게 준비해야 한다. 그 후엔 열정을 담아 준비한 사업 보고서를 내밀며 서로를 투자자라 생각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최선을 다해 작성한 보고서를 가지고 서로를 열심히 꼬셔보는 거다. 시력이 크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안경은 꼭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볼 예정이다. PPT도 아주 요란스럽게 만들 거다. 여기까지만 상상해도 벌써. 신난다. 그리고는 채택된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함께 실행해 보는 거다. 꽤나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아이템은 매우 소소해도 된다.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붕어빵 혹은 군고구마를 팔아보는 것도 괜찮다. 다만 계획과 실행은 최선을 다해서 끝내주게 해 보는 거다. 폭삭 망해서 투자금을 날려도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엉망진창이어도 좋을 것 같다. 각자의 아이템을 한 번씩 실행에 옮겨보고 누가 더 많은 성과를 내는지 내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함께 목표를 정하고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재밌는 추억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는 공연을 해보고 싶다. 여고시절 밴드부에 있었다. 비록 박치였고 실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밴드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다. 둘이서도 좋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여도 좋을 것 같다. 합주연습도 하고, 부족해도 예쁘게 보아줄 사람들을 불러 신나게 놀아보는 하루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박자도 안 맞고 가사도 틀리고 중간에 악보를 까먹어도 충분히 좋을 것 같다. 노래 부르고 싶은 관객이 있다면 무대로 나와서 즉흥적인 무대를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멋진 연주여서가 아니라 다 함께 그저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사촌동생이 결혼식에서 밴드공연을 했었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신났던 기억이 있다. 드레스를 입고 베이스를 맨 신부는 끝내주게 멋졌고 신랑은 최고의 선곡과 넘치는 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이미 많은 퍼포먼스와 함께 결혼식을 한 어떤 이도 이 결혼식을 보며 다시 결혼하고 싶다 말할 정도였다. 결혼식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소규모 공연장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껏 초대해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글과 글이어도 좋고 글과 그림이어도 좋겠다.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 작가님처럼 한 시절을 서로의 입장에서 써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예술가이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예술에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오랜 소망이 있다. 나는 글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니까 그와 함께 정말 매력적인 마음 하나 온전히 꺼내놓고 싶다. 작품을 만드는 내내 행복한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문득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 떠올랐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일 것 같다.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다. 하루 종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 또 그다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다.
'지금'의 중요성을 말하는 영화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단연코 [죽은 시인의 사회] 일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영화 중에 하나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 감정이 너무나도 커서 그것을 다 꺼내어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어떻게 표현해도 다 담아내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다. 좋다는 말을 열 번쯤 반복해서 말해도 목소리를 높여 "좋아해요!"라고 말해도 개운치가 않다. 이 영화. 정말 많이 좋아한다. (올해 안에 내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꼭 찾아내야겠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것을 세상에 외친다.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도 충분히 괜찮다는 위로와 나중이 아닌 지금을 살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삶이라는 게 엄청 대단한 듯해도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삶의 목적을 낭만과 사랑에 두기. 지금을 충분히 살아내기. 이걸 깨닫게 된다면 생각보다 자유로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낭만이 없는 삶은 퍽퍽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건조하다. 점점 사랑예찬론자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대상이 누가 되었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꼭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갈 수 있는 삶이라면, 이미 충분치 않은가.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충분히 살아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멋진 인생이지 않을까? 타인의 인정과 시선 속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행복했다면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신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최고의 인생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지금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