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그림자
당신에게서 나던 숲 내음을 맡고 싶어. 여전히 그 향수를 쓰고 있을까?
나도 한때는 그이의 손을 잡고 내가 온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꽃송이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모두 날 위해 피어났지 올림픽대로 뚝섬 유원지 서촌 골목골목 예쁜 식당 나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옥같은 대사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 아이유[드라마] -
따뜻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세상엔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죽을 만큼 깊게 베어본 이는 세상에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랑은 찬란하다. 세상 그 무엇 보다도 빛난다. 사랑이라는 것에 언제나 따라붙는 이별. 왜 그토록 눈부시던 것은 빛을 잃게 되는 것일까?
그림책테라피스트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프로그램 두 가지를 기획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나 들여다 보기' 그리고 '사랑에 대해 사유하기'. 그림책테라피는 테라피스트가 선정한 책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인데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야 언제든 편하게 다뤄지는 것 같지만 다들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기억이 하나쯤은 있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무조건 꺼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타인에게 꺼내 놓는 것부터 치유는 시작되기에 아쉬움이 남긴 했다. 쉽지 않다. 겨우 겨우 저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놓은 이야기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들 어떤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옛날 드라마에선 여자주인공이 우는 장면을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작가들은 남자 주인공을 울리기 시작한다. 남자가 운다. 내가 잘 모른다고 판단되는 어떤 존재이기 때문일까? 남자는 쉽게 울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으로 흔치 않은 장면이라 생각돼서 일까? 유독 슬프게 느껴진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가지 말라며 다섯 살 꼬마 아이처럼 애처롭게 운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은... 울리는 게 아니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와 에두아르 부바가 함께 지은 에세이 [뒷모습]의 내용을 인용한 어느 글을 보았다.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이런 상념에 젖게 된다. 과거에 나는 어떤 쪽이었나. 뒷모습을 보이는 쪽이었나, 뒷모습을 보는 쪽이었나. 만일 보이는 쪽이었다면 얼마나 망설였고 떨렸으며 상대에게는 정직했는가. 보는 쪽이었다면 내 마음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을 조그마한 얼룩은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가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이 쉬운 사람이 있을까? 진짜 사랑이었다면 결코 어느 한쪽만 아플 수는 없는 일이다. 감정이 변했어도 상황이 변했어도 행복했던 순간은 각자의 기억 속에 머무른다. 뒷모습을 보이는 쪽도 보는 쪽도 모두 이별을 겪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무게만큼, 마음의 무게만큼 서로 견뎌내야만 한다. 결국, 이별을 이겨내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애도의 기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엘리자베스 퀴블로스는 1969년에 출간된 책 [죽음을 맞이하며]에서 애도의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제시했다. 주로 말기 환자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이 겪는 심리적 과정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 이론은 이별, 실직, 중대한 삶의 변화 등 다양한 상황에도 적용되고 있다.
첫 번째는 부정의 단계이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별이 현실이 아니라 느끼는데 이는 충격적이거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기본적인 반응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분노의 단계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과 분노를 느끼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또는 "이것이 불공평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분노의 감정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세 번째는 협상의 단계이다. 상실을 막기 위해 일종의 거래를 시도하게 된다. "만약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또는 "이 상황이 해결된다면, 나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네 번째는 우울의 단계이다. 상실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로 인해 깊은 슬픔과 우울함을 느끼게 된다. 자주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일상적인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되며 감정적 고통을 겪는다.
마지막은 수용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감정을 통합할 수 있게 된다.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나가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관점을 찾아가려는 과정이 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별은 결국,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감정이라는 거다. 무엇이 되었든 그 힘든 감정의 끝은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이별노래를 들었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노래는 김완선 님의 '이젠 잊기로 해요'라는 곡이다. 청아한 목소리가 담담하게 담긴 이 노래는 이별의 아픔과 대비되며 긴 여운을 남긴다. 글을 시작하며 꺼내 놓은 아이유 님의 '드라마'라는 곡도 마찬가지다. 애절함, 고통을 표현하며 울부짖는 노래의 몇 배는 더 슬프게 느껴진다. 왜일까? 분노, 고통, 슬픔 그 모든 감정 후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제는 그 시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아두게 되는 '진짜 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의 감정과 같아서일까?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시간을 이제는 아는 마음인 걸까. 어릴 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듯 이별도 한 가지 모습은 아니라는 것. 이별에도 수많은 이야기, 수많은 감정들이 담긴다는 것을...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걸 잊어요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그대 생일 그대에게 선물했던 모든 의미를 잊어요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걸 잊어요 그대 생일 그대에게 선물했던 모든 의미를 잊어요 술 취한 밤 그대에게 고백했던 모든 일들을 잊어요 눈 오던 날 같이 걷던 영화처럼 그 좋았던걸 잊어요 [이젠 잊기로 해요 - 김완선]/
이별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어짐을 선택하게 되는 영화를 가져왔다.
걸을 수 없는 주인공 쿠미코는 집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와 자신을 '조제'라 부르는 그녀는 대학생 츠네오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남자 주인공을 쉽게 관계를 맺는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도 조제와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데 한몫을 한다. 자유로운 이성관을 가진 그는 순수한 그녀에게 반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신체적 불편함은 장애물이 아니라 마음을 써주고 싶은 무엇이 된다. 두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진짜 사랑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츠네오는 현실을 마주하며 사랑에서 도망친다. 마음을 써주고 싶던 무엇은 버거운 짐이 되어 버린다. 조제는 시작부터 예견했다는 듯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미소 지으며 안녕을 말하는 이별이었다. 츠네오의 마지막 독백은, 헤어지고도 친구처럼 보는 관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평생 조제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도 있겠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했으리라. 이별 후 조제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여리고 순수한 보호와 도움의 대상이었던 조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영화의 전개를 암시하는 장치로 쿠미코가 사강의 소설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부터 결말을 예견하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우리의 이야기들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 뒤에 오는 허무함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조제가 말했다. / 영화 속에서 쿠미코가 인용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 대화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의대생 신디와 운명적 사랑을 믿는 이삿짐센터 직원 딘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다. 딘은 신디에게 첫눈에 반했고 둘은 너무도 예쁘고 뜨겁게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랑을 한다. 둘은 진짜 사랑을 한다.
" 잘 봐야 한단다. 네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엄마 아빠처럼 되긴 싫어요. 그분들도 한 때는 사랑하는 사이였겠죠. 절 낳기 전에 사랑이 식어버린 걸까요?"
"사랑을 찾으려면 감정을 믿는 수밖에 없단다. 넌 좋은 아이야. 너 자신을 믿어도 돼. 넌 그럴 자격 있어"
- 영화 속에서 신디가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 -
신디도 결혼을 선택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딘과 지금의 강렬한 감정을 굳게 믿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영원한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결혼 후 현실을 마주한 신디의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간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감정의 변화를 더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섬세하게 만들어진 각본이다. 배우들이 실제로 며칠을 함께 생활하면서 감정을 쌓아 놓은 후 촬영 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는데 라이언고슬링 배우님은 촬영이 끝난 후에도 결혼반지를 손에서 빼는 것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사랑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인 걸까? 연애를 할 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결혼이라는 공동체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되었을 땐 사랑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이 세상의 진리인 듯 표현하는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은 절대적인 걸까? 조건을 보고 결혼한 사람과 사랑으로 결혼한 사람 중에 이혼율은 전자가 더 높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사랑이 결혼에 대한 선택 이후 마주하게 되는 '결혼생활'이라는 것에서는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까? 경제적인 문제로 격하게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갖추어졌다는 전제하에서만 유지가 가능한 걸까? 땡빚을 지고도 이혼하지 않는 부부의 경우, 그건 사랑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 사례일까? 아니면 배우자의 인내심과 인성 때문인 걸까?
결국엔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 이후의 일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책임의 무게를 고려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생각해 보자. 사랑은 현실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을 때만 유지되는 걸까? 현실이 사랑을 가리는 걸까? 사랑의 본질은 한시적인 감정이기에 현실적인 부분에서 안정 혹은 만족을 느낀다면 이미 사라져 버린 사랑이지만 그것에 대해 인지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는 것일 뿐인 걸까?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무의미해져 버린 사랑과 씁쓸한 이별뿐인 걸까?
남자가 여자보다 로맨틱한 거 같아요. 남자가 결혼할 땐 이 여자 놓치면 바보다 평생 후회하겠다 싶은 그런 상대를 찾죠. 그런데 여자는 조건 좋은 남자를 고르는 것 같아요. 직업 번듯하면 결혼하는 거죠. 백마 탄 왕자 찾다가 직업 괜찮고 충실한 남자면 결혼하잖아요. / 블루발렌타인 딘의 대사
한참을 앉아 생각해 보았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사랑의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는 영화가 떠올랐다.
물론 많이 각색은 되었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부분에서 지극히 서로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표현한 노트북이라는 영화가 있다. 첫사랑이었던 노아(남자 주인공)를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조건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의 문턱에서 다시 만나게 된 앨리(여자 주인공). 그녀는 결국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을 택한다. 타인의 인정과 부러움, 이성적 사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을 향하는데도 불구하고 앨리는 그런 선택을 한다. 선택의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서로 한평생 따뜻했고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고 끝까지 사랑을 지켰다.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좀 더 가능했다 추측해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엔 직업과 자산보다 감정적인 사랑을 오래도록 품는 사람들도, 그런 선택과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
난 비록 죽으면 쉽게 잊혀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마지막은 역시 이터널선샤인이다. 이별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많은 영화이지만 여기선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금 그쪽 모든 게 맘에 들어요."
"지금이야 그렇죠. 그런데, 곧 거슬려할 테고 난 당신을 지루해할 거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두 사람이 서로)"괜찮아요.."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과 결말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니까 괜찮아'라는 스티커를 붙이며 사랑을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시작할 땐 괜찮았고 오히려 끌림의 이유가 되는 그것은 마지막엔 그 때문에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분명 온몸의 세포들을 곤두세우며 상대를 열망했음에도 이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실에 그림을 그리러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좋은 음악, 좋은 햇살과 함께였다. 화실에는 커플들이 데이트를 하러 종종 오곤 하였는데 하루는 어떤 커플과 마주 보는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들으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내적 심판관이 되어 몰입하게 되었다. 둘의 대화는 매우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림을 그리며 서로의 완성도에 대해, 이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였음에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남자는 기분이 상하고 불만이 쌓여가는 게 보였다. 남자의 말투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는데도 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평범하게 대꾸했다. 종국에는 여자도 기분이 조금 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싸우게 되는 이유가 끝나고 무엇을 먹을지와 같은 너무도 사소한 것이다. 찬란한 도파민의 시기를 지나 모든 것이 보기 싫어지는 메마름의 시기였던 걸까? 충분히 이해해 줄 만한 것들인데도, 이상하게 듣기 싫은 말들로 와닿는 듯했다. 그들은 아직 만나고 있을까? 원래 관계는 권태를 극복하면서 단단하고 깊어진다고 한다. 그 산을 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동의할 때 가능하다. 그렇게 산을 넘는 것과 단단해짐을 반복했을 때 연인은 안정기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산을 넘지 않는다. 한 번의 산은 넘더라도 반복되는 산을 이별의 신호로 여기며 멈춘다. 처음엔 다 괜찮던 것들이, 이해가 되던 것들이 괜찮지 않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 그렇게 연인은 이별을 한다. 이별의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도 이별의 고통 때문에 사랑의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하지만 사랑의 기억을 지우며 깨닫는다. 너무도 눈부시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존재했었음을... 그리고 그 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기억을 지울 것인가?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처럼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도 존재할까?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듯 이별의 형태도 한 가지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여전히 나는]이란 그림책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이별 후에 남은 그리움. 완성된 그림책은 헤어진 연인의 그리움을 담고 있지만 글작가 그림작가는 좀 더 폭넓은 의미의 그리움에서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별 그리고 그리움. 사랑이 부족해서 이별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사랑의 감정이 변해서 이별을 하게 되는 걸까? 사랑의 감정과 이별의 감정은 크기가 같을까? 좋은 이별이라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가장 익숙하고 따뜻했던 시공간이 낯설고 차가워질 때의 먹먹함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언어가 세상에 존재할까? 사랑만큼이나 이별도 참... 깊고 어렵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곳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대 어떤가요 그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어떡하죠 이젠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 텐데-
- NELL [기억을 걷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