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우리가 사랑할 때

by 다토

"저, 실은......" 코끼리가 또 어물거렸습니다. 그러고는 숨을 깊이 들이켰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러니까, 어떻게 아는지......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죠?"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글/린 판덴베르흐, 그림/카티예 페르메이레

매번 주인공만 바뀌고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듯 만들어지는 드라마들 속에서 오랜만에 전통 멜로드라마가 나왔다. 시청률이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시한부였던 어머니와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를 보며 '사랑'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며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화감독 이제하. 그는 종종 묻는다. "사랑이 뭐죠?" 그는 그저 계산적이고 필요에 따라 사람을 대한다. 그런 그의 앞에 시한부 다음(전여빈 배우님)이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마지막 영화였던 <하얀 사랑>이라는 영화를 진짜 시한부 다음이와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 그의 마음은 변해간다. 이미 시작된 사랑을 주인공 이제하가 가장 늦게 깨닫는다.

[우리 영화] 극 중 영화감독 이제하/ 남궁민 배우님

이렇게나 무미건조한 표정이 본인도 부정할 수 없는 감정으로, 오랫동안 몰랐지만 표현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했다. 사랑은 그런가 보다. 그 사람의 시선 끝만 따라가도 쉽게 알 수 있는 것. 그렇게 들통나기 쉬운 것. 싫어하는 것이 상대와 함께라면 할만한 일이 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계속해주게 되는 것.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물든다. 결말을 알면서도 생각하기를 멈추게 된다. 사랑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랑은 티가 난다. 그렇다면 주인공 이제하 감독이 반복해서 물었던 것처럼 우리는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해마다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이 언덕에 모여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한다. 이번 논제는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라는 것이었다.


"그녀를 만난 그 첫 순간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내가 마치 코끼리만큼이나 크고 강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 기분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개미가 말했다.


"우리 왕자님과 입맞춤을 할 때면요, 전 모든 괴로움을 잊게 돼요. 심술궂은 새엄마, 싸움, 독이 든 사과... 전부 다요. 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랑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백설공주가 말했다.


돌멩이는 사랑하는 돌이 곁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한다. 햇볕 없이 못 사는 사과나무는 마음에 쏙 드는 사과나무가 옆에 서 있으면 햇볕을 더 많이 받도록 양보를 한다며 어떤 나무가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그 나무는 분명 자기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스스로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북극곰은 따뜻한 섬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태양은 자신이 지쳤을 때 자신의 일을 달님이 떠맡아 준다고 한다. 눈송이들은 서로를 녹일 정도의 마음이라 그게 사실이라는 건 누구든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먼저 떠나신 할아버지에게 시를 읽어주고, 여자 아이는 시를 써서 남자친구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남자는 여자대신 본인이 아프다는 게 다행이라며 좋아한다. 그리고 별들은 말한다.

"우리는 말없이도 영원토록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드라마에서도 그림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늦게 깨닫더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너무도 분명한 감정이라서 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엉뚱한 행동들을,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게 되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강렬한 감정과 평소 같지 않은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걸까? 사랑은 꼭 그리도 강렬한 무언가인 것일까?


건축가 유현준 님은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백화점에서 어떤 옷을 보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생각이 나서 결국 백화점에 가 구입하게 된다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그 옷을 입고 있었다면 그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건 이토록 불가항력적인 무언가인 것일까? 조금 더 나아가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정신 차려 보니 결혼해 있더라고. 사랑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 진짜 사랑이라면 결혼이라는 게 어렵기보단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라는 뜻 같다. '사랑' 이거 생각보다 더. 능력 있다.


더위에 지친 김에 작업을 멈추고 찬바닥에 벌러덩 누워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도망쳐 요코하마에서 잠시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여자친구가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감정을 섬세하게 써 내려간 독립출판물이다. 결국 그녀가 사랑하는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저자는 차고 흘러넘치는 감정을 이길 수 없어 고백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좋은 연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둘은 서로의 손을 끝내 잡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속에 흉터처럼 남은 그를, 떨쳐내지도 떼어내지도 못할 그를 그대로 남겨두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 시절의 자기 자신과 함께 말이다. 상대의 마음이나 상황, 예상되는 결말과는 상관없이 사랑은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열병이 낫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는 있지만 언제 나을지 알 수는 없다. 앓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 양귀자 [모순] -


5년쯤 되었을까? 주제를 정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사랑이 주제였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질문이었던 것 같다. 질문은 사전에 받긴 했지만 그땐 힘든 일이 연거푸 몰아치던 시기였기에 깊게 생각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미리 생각하지 못한 내용을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답했다. 나는'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줄 때'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나의 대답에 사람들은 "너무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은 여전히 이런 것을 기대하는 약간의 어린 마음과 상대를 위해 개선해 가는 어른의 노력 그 어디쯤에 있다. 그때 툭 튀어나온 나의 대답과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제 사랑에 빠지는가?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있나? 사랑에 빠졌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애초에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을 알 수가 있을까? 안다고 해도 그건 자산, 학벌, 직업이라기 보단 굉장히 사소한 무언가이지 않을까? 타인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나에겐 특별함으로 다가온 어떤 짧은 순간. 그런 것들. 그때의 질문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기 보단 설레거나 좋은 감정을 느끼는 포인트에 대한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반듯함'을 좋아한다. 사회생활로 만들어진 표면적인 반듯함이 아니라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드러나는 반듯함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한 번씩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거기에 약간의 귀여움이 담긴다면... 그렇다. 매우 내 취향이다.

SBS에서 방영했던 [집사부일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애착이론, 사회 교환 이론, 호르몬,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 이론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해 놓은 자료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뇌과학으로 유명한 정재승교수님께서 사랑학 수업 사례에 대해 말씀해 주신적이 있다. 사랑에 빠진 학생에게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MRI로 뇌를 찍어 보았는데 뇌가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도 확실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덧붙여 우리 뇌의 곳곳을 자극하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사랑은 티가 난다. 이어 해당 여학생이 좋아하는 조인성 배우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뇌사진을 한번 더 촬영했는데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SBS에서 방영했던 예능 [집사부일체]

역시. 잘생김은 모든 걸 이긴다. 부정할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나도 조인성 배우님 사랑해요(?)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란 어떻게든 티가 나는 것, 늦더라도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무언가라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을,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너무나도 좋아했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 중 [위로]라는 노래다. 세상과 다른 눈과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때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위로] - 권진아

세상과 다른 눈으로 나를 사랑하는

세상과 다른 맘으로 나를 사랑하는

그런 그대가 나는 정말 좋다


나를 안아주려 하는 그대 그 품이

나를 잠재우고 나를 쉬게 한다

위로하려 하지 않는 그대 모습이

나에게 큰 위로였다

나의 어제에 그대가 있고

나의 오늘에 그대가 있고

그댄 나의 미래다


나와 걸어주려 하는 그대 모습이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쉬게 한다

옆에 있어주려 하는 그대 모습이

나에게 큰 위로였다

나의 어제에 그대가 있고

나의 오늘에 그대가 있고

나의 내일에 그대가 있다

그댄 나의 미래다


마지막 하나 더.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정답은 명확하다. 말이든 행동이든 표현하는 것. 이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랑은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무뚝뚝한 영화[이프 온리]의 남자 주인공도 마지막 깨달음은 그것이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 생각보다 인생은 짧을 수도 있다.

영화[이프 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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