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나에게도 날개가 생겼다.

by 다토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나다씨는 자신의 등에 날개가 돋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돋아난 날개를 보며 당황하던 나다씨는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나다씨를 돌려보낸다. 나다씨에게 날개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글/ 다비드 칼리, 그림/ 모니카 바렌고




공효진, 조인성 배우님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좋아했었다. 어딘가 서투르고 조금씩 부족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 속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역시나 존경스러운 노희경 작가님은 주옥같은 대사들을 많이 만들어 내셨다.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우리 모두 환자다.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이렇게 나무에 묶어두지. 근데, 아침에 끈을 풀어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난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얘기지."


"옛날에 어떤 마을에 깊고 깊은 동굴이 하나 있었어. 그 동굴에는 천년동안 단 한 번도 빛이 든 적이 없었지. 천년의 어둠이 쌓인 깊은 동굴, 사람들은 그 어둠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지. 지금 너처럼. 사람들은 모두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천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빛이 드는 건 지금처럼 한 순간이야. 네가 30년 동안 사랑을 못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괜찮다고.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 순간일 테니까"


"다음에 사랑을 하면 그냥 느껴봐. 계획하지 말고 다짐하지 말고."


남자 주인공은 조현병에 걸린 스타작가다. 여자 주인공은 어릴 적 상처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사는 정신과 의사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조현병에 걸린 상대를 알고도 무섭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기다릴 테니 이겨내 달라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도장을 쾅! 하고 찍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건 분명한 사랑이에요!"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런 사랑을 했었나?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던 걸까


상대의 멋지고 빛나는 부분만이 아니라 가슴 깊숙한 곳의 어둡고 축축하고 초라한 부분까지도 괜찮다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먼지 쌓인 방구석에 거미줄로 가득한 그 방에... 함께 들어가 조금씩 천천히 빛을 드리우고 먼지를 털어내는 것. 그 구석이 조금은 안락한 곳이 되어 가끔은 그가 혼자 조용히 들어가 쉴 수 있도록 돕는 것. 혹은 거미줄 쳐진 그 방구석 자체도 충분히 낭만이 있다며 미소 지어줄 수 있는 그런 게 사랑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뭉근하고 아련한 밤이다. 모두의 경험과 기준은 다르기에 어떤 것은 사랑이고 어떤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감히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의 속성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이 정도의 희생을 수반해야지만 진정한 사랑이다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고요히 머무는 마음이 그렇다. 두 번은 없는 딱 한 번뿐인 인생에서, 원 없이 뜨거운 마음 한번 가져보고 싶다.



"나는 이 드라마를 쓰며 많은 사람들이 제 상처와 남의 상처를 관대하고 자유롭게 보길 바랐다. 우리가 진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은 드라마 속의 환자가 아니라 자신이 늘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 약자를 짓밟고 번번이 승자만이 되려는 사람이 아닐까. 인생은, 사랑하면 되고, 행복하면, 더는 다른 목적 없이 끝나도 좋은 것, 쓰는 내내 여타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당연히 중간중간 고통도 불행도 찾아왔지만 결국엔 사랑했고 종국엔 행복했다."

- 괜찮아 사랑이야 대본집, 노희경 작가 말 중에서 -




7,8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자취를 하는 친구가 청소를 의뢰했는데 시간 조율이 어렵다며 대신해 청소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청소가 마무리될 즈음에 맞춰 그의 집에 갔다. 열려 있는 현관문 앞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청소가 많이 고됐는지 여자는 남자의 팔을 움켜 안은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어려 보였지만 대화로 미루어 보아 부부인 듯도 했다. 남자의 팔을 꼬옥 안고 기대어 있던 그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유 없이 잔상이 남아, 내 몸속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문득문득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을 헤집어 내려 애쓴 것도 아닌데 반복해서 그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배우자의 조건으로 학벌, 집안, 자산, 직업 등등을 따지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결혼했을 경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모든 조건을 가졌다면야 더더욱 좋겠다마는... "나는 이 사람을 이만큼이나 사랑해!"가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요즘엔 유독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많이 던져 보고 있다. 또래에 비해 다소 늦은 질문들일 수는 있으나 내 삶의 시간표에선 지금이 질문의 '때'인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가? 계속 생각해 보고 있다. 나에게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다씨의 날개를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의사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철물점 아저씨는 가위로 잘라 준다고 하고 사장은 일에 방해가 된다며 뜯어 버리라고도 한다. 지혜로운 할아버지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니 날개가 생긴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 나다씨 앞에 날개를 가진 아가씨가 나타난다. 그제야 날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개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누군가 희생되거나 고갈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해 주는 관계를 원한다. 서로가 스스로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되 그 방향이 같길 바란다. 서로가 고된 인생의 여정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 되어주길 바란다. 가장 가깝기 때문에 쉬운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사람이길 바란다. 반복되는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게 아니라 인생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엔 "우린 정말 끝내주는 한 팀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였기에 이겨낼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을 신께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다씨에게 날개가 돋아난 데도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모든 경험에 감사한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나를 돌아보며 어느새 나에게 돋아난 날개를 따뜻하게 바라봐줄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남긴다. 어쩌면 날개는 서로를 알아보라는 작은 힌트 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당신에게도 날개가 생긴 이유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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