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

사랑이 뭘까?

by 다토

어느 봄날 아침이었어. 여자가 아무도 몰래 피어난 희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발견한 건...

[사랑의 모양] 글 / 다비드 칼리, 그림 / 모니카 바렌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피어난 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그 꽃이 어느 순간 피어나게 되었는지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까? 몇 번의 스쳐간 인연들은 모두 사랑이었을까? 사랑이라는 건 과정 속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끝나고 난 뒤에만 알 수 있는 걸까?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뭘까? 영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여주인공처럼 혼란스럽고 공허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도무지 선명해지지 않는 그것에 대해 이제는 정의 내리고 싶다.


나는 연애 횟수가 매우 적다. 연애 경험이 한 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십 대 초반 고백을 받고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는 형태로 잠시 머물렀던 몇몇의 기억들이 있긴 하지만 데면데면한 상태 혹은 참을 수 없는 어색함으로 도망가기 바빴던 것 같다. 그렇게 빠르게 엔딩. (그렇기에 연애 횟수에는 미포함. 사실 기억도 잘 안남) 연애 공백기도 꽤나 길었다.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달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여중 여고를 나온 이의 찐따스러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많이 만나보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래야 안목과 유연함이라는 게 생기는데 말이다. 20대 후반으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나 같은 프로 도망러를 강하게 잡는 사람이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내 앞에 서는 사람은 있었지만 이 친구는 차원이 달랐다. 스무 살 때 한 달 정도 만났던 친구였고 긴 공백기 동안 드문드문 그렇지만 강렬하게 감정을 쏟아내게 했던 사람이었다. 스무 살. 그저 몇 번 보았고 내내 말이 별로 없던 그였고 그 시절 내가 좋아하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우리 집 앞에 서 있던 단편적인 기억이 전부였다. 나는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의 마음의 무게를 잘 모르던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


20대 후반. 몇 번을 밀쳐내도 강하게 다가오는 그 친구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감정을 쏟아낼 만큼 쏟아낸 후의 연애였기에 표면적으로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였지만 사실 나는 내내 그를 미워했고 밀어냈다. 질리고 지칠 법도 한데 그는 나를 견뎠다. 그와 나는 항상 그랬다. 그가 나를 좋아하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그를 좋아하면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를 알게 된 후로 꽤나 긴 시간이 그러했다. 연애를 하는 내내 나는 그를 밀어냈고 그는 나를 계속 붙잡았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런 형태였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사람이었고 호불호가 강하지만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에겐 항상 가장 좋은 마음을 내어 주려는 사람이었다. 나를 만나는 시간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나의 기억 속 그의 모습은 그러하다. 조금 더 떠올려 보자면... 함께 했던 그 시간 속에서 나의 바닥을 견뎌 주었던 그였기에 나 또한 그의 바닥을 특유의 덤덤함으로 아주 오랜 시간 견뎌 주었다. 그렇게 타인은 이해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세상엔. 이런 관계도 있다.

이건 사랑이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애 공백기에 눈길이 머무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조금 더 마음을 표현해 주길 바랐다는 것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은 몇 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끝끝내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사실 내가 다가서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용기를 내지 않았다기 보단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명확히 보이지 않는 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생각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몇몇의 일화들을 통해 그건 그만의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건 사랑이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때 꽤나 열렬히 누군가를 좋아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랬다. 한번 마음에 두면 오래도록 좋아했다. 어렵게 어렵게 좋아하고 미련하다 싶을 만큼 오래오래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 친구를 보면 너무 좋았고 방과 후 그 친구의 책상을 대신해 정리해 주는 게 좋았고 아주 유치하지만(지금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글오글) 가끔 시를 적어 그 친구에게 주는 게 좋았다. 키가 컸고 하얗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준 편지와 흔적들을 아직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아주 강렬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이건...사랑인가???


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누군가를 갈망하는 것이 사랑인 걸까? '서로'라는 것이 성립해야만 사랑인 걸까? 아니면 일방적이더라도 상대에게 한 없이 내어 주는 게 사랑인 걸까? 사랑이란 건 타인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내 안에서 존재하는 그런 무언가인 것일까?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역시 사랑은 주고받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나에게서 비롯된 하나의 감정인 걸까? 꼭 서로가 아니어도 내 안에서 비롯된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다비드 칼리 작가님과 모니카 바렌고 작가님의 조합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다. 그들의 감성으로 오래오래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이야기를 하기 위해 꺼내든 [사랑의 모양]이라는 책은 어느 순간 피어난 꽃에 대한 여자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피어났는지도 모르는 그 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책에서 여자는 꽃이 사라진 후 스스로의 생각에 잠긴다.



병이든 걸까? 물이 너무 많았던 걸까? 아니면 너무 적었을까? 놓친 것이 있는 걸까? 넘친 것이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르자 잎도 줄기도 시들어갔어. 꽃은 한 송이도 남지 않았지. 밤마다 여자는 생각했어.

'다시 꽃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어떤 아름다움은 왜 사라져 버리는 걸까. 무언가를 망치는 사랑도 있는 걸까?'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어.

"너 그 꽃이 정말로 너 때문에 피고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내가 한 일은 모두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말이야?"

목소리는 대답했어.

"사랑이 너를 기쁘게 한다면 그건 네가 무엇을 주어서도 무엇을 돌려받아서도 아니야.

단지 지금,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시간이 흐르고 비로소 꽃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말한다. '가질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일까?"

오랜 시간 정원에 머물며 생각에 잠겼던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마음에 남는 텍스트는 '꽃은 떠났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꽃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림에서는 꽃 주변에 육각형의 형태를 점선으로 표현하고 그 옆엔 열쇠를 하나 그려 두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의 상처로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사랑이 떠났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니 떠났다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그 문을 여는 것도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상징인 걸까?


그림 옆 텍스트는 '가질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일까?'이다. 내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만으로도 사랑은 성립하는 걸까? 반드시 대상과 함께 나누어야만 사랑인 걸까? 그렇다면 사랑은 대상의 부재와 함께 사라지는 걸까?


사랑이 뭘까? 사랑이라는 건 감정인 걸까? 아니면 시간과 순간의 속성인 걸까?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헤매기도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내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은 참 중요하다.


언제나 어렵지만 '사랑'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안아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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