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맞는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길고양이 프레드와 회색 거위 애너벨은 여름을 함께 지냈어요. 여름이 지나고 애너벨은 가족을 따라 머나먼 남쪽으로 날아가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했어요. 긴긴 겨울 동안 프레드와 헤어져서 말이에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여름을 보낸 길고양이 프레드와 회색거위 애너벨이 추운 겨울 동안 떨어져 지내며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따뜻한 봄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독일작가의 작품이다. 함께일 때도 함께하지 못할 때도 서로는 항상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어 돌아온 거위를 고양이가 안아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같이 있을 때도 같이 있지 않을 때도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그림책을 읽고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프레드와 애너벨은 다르다는 것이다.
고양이와 거위라는 종의 차이도 있었지만 성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길 고양이 프레드는 사람들과 사는 걸 좋아했고 애너벨은 사람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랑 잘 맞는다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사랑한다는 마음이 중요할까?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나와 잘 맞는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아닌 경우를 가정해 보자. 연인은 잘 맞기 때문에 좋아질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너무 좋다가도 서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나랑 잘 맞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사랑을 하는 것이 중요한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MBTI를 대체할 만한 것이 아직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사람들은 MBTI를 묻는다. MBTI로 잘 맞는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한다.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MBTI별 최고의 궁합과 최악의 궁합을 순위별로 선정하고 이유까지 자세히 분석되어 있는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흔히 F와 T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고 하는데 F와 T 보다 S와 N의 조합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같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가 달라서 이해도 어렵고 오해도 쉽게 생긴다고 한다. MBTI를 통해 서로 잘 맞을지의 여부를 미리 판단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 중단할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사람을 네 종류의 혈액형으로 구분하던 때보다는 훨씬 나은 판단의 도구인 것은 분명 하지만 성격유형 검사 하나로 상대의 너무 많은 것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은 잘 맞을지의 여부가 시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MBTI와 더불어 고전적인 방법으로 사주 궁합이 있다. 궁합도 결국엔 기질에 대한 분석이고 잘 맞을지 여부에 대한 판단 도구가 된다. 요즘엔 gpt 사주까지 등장하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주에서도 최악과 최상의 인연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운명의 지도라고 일컬어지는 사주 속 내용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주 궁합이 좋다고 하면 인연일까 싶은 마음에 기분도 좋고 좀 더 마음을 쉽게 열게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궁합이 좋지 않다고 꼭 피해야 할 인연도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잉꼬부부의 고전으로 불리는 최수종 하희라 배우님 커플도 사주 궁합은 최악이었다고 한다. 정말 안 맞는 사이였던 거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더 컸기에 배려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서로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던 것 같다. 이전의 나는 잘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면 분명 인연일 거라 생각했었다. 오랜 시간 서로를 위하며 잘 지내는 연인 혹은 부부를 보면 분명 저 사람들은 잘 맞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편견이었다.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이 부부는 성향도 정반대였고 심지어는 음식 취향까지 너무도 달라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다른 음식을 먹기도 했다. 저렇게 다른데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게 가능한 거구나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연애와 결혼까지 이어온 우리 이모, 이모부들도 그러했다. 서로 너무도 다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싸우더라도 밉더라도 다시금 서로의 자리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경험을 통해 생각이 조금 유연해졌다. 꼭 잘 맞지 않더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주고 다듬어 나갈 수 있는 거구나. 잘 맞으면 좋겠지만 잘 맞지 않아도 사랑하면 맞춰나갈 수 있는 거구나.
잘 맞는 사람에게는 쉽게 호감이 생긴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더 쉬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잘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상황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잘 맞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잘 맞을 때의 즐거움과 편안함은 사랑이 맞을까? 나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손을 놓을 것인가?
내 삶 속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니 한 번쯤은 고민해 보고 어느 정도의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간 결혼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는 더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김창옥쇼>에 나왔던 한 부분을 가져왔다.
김창옥 강사님은 말한다. 처음에 남자가 맞춰주는 거 계속 그러기는 힘들다. 그러니 상대가 감정적으로 잘해주는 것보다 이 사람은 나한테 있어서 참 고맙고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라서 내가 좀 더 손해 봐도 괜찮다.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이 부분에서도 등장한다. 나한테 잘해주니까, 나와 잘 맞으니까 결혼하고 싶어라는 마음들. '잘 맞으니까'라는 부분은 안정감과 행복감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 행복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을 극복해 본 사람이 더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랑 잘 맞는다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상대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중요할까?
길고양이 프레드와 회색거위 에너벨은 종이 다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조금 다른 부분도 생각해 보자.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서로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지 않을까? 정말 너무 잘 맞는 사람들이 있을까? 시간을 들여 서로 맞춰나가는 과정 없이도 척척! 딱딱! 그런 환상의 조합이 세상엔 존재할까? 경험해 보지 않은 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한 노부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책이 한가득 있는 서재에는 같은 책이 두 권씩 꽂혀 있었다. 같은 책을 왜 두 권씩 구매하셨는지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러하였다. 서로 생각이 같다 보니 어떤 날은 같은 책을 사 오게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두 권의 책이 나란히 꽂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셨다고 한다. 이건... 많이 부러웠다. 다른 건 다 달라도 괜찮은데 가치관은 같았으면 좋겠다.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잘 맞기를 원하는 걸까? 어렵다.
짠한 형에 나온 신동엽 님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두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데 인생에서는 어떤 것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상대가 아닌 내가 어떤 것들을 수용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지 스스로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했다. 이 말에 동감한다. 결국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이면 충분할지 아니면 나와 잘 맞지 않더라도 기꺼이 손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중요할지 말이다. 잘 맞기 때문에 편안하고 그로 인해 함께 방향을 설정해 가는 것도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수월할 수 있다. 사랑하지만 안 맞는 것 때문에 오래오래 지겹고 짜증이 물밀듯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도 책임도 스스로의 몫이다. 때문에 나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랑 잘 맞는 것이 중요한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고 싶은 두 번째 페이지는 프레드와 에너벨이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떠올리는 부분이다.
어느 날 프레드는 왠지 몸이 이상했어요. 프레드는 지금까지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어요. "이 반점이 없어지지 않으면요? 몸에 이런 반점이 있는데도 애너벨이 날 좋아할까요?" 폴라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어요. "잘 들어, 프레드. 애너벨은 네 몸에 부스럼이 나든, 털이 빠지든 너를 좋아할 거야."
"프레드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에너벨은 마리에게 물었어요. "만일 다른 거위를 알게 되었다면? 나보다 더 예쁘고 겨울에도 추위를 타지 않아서 여러 달 동안 떠나 있지 않아도 되는 거위말이야. 후버 씨네 뜰에 있던 그 거위 같은..., 너도 알지? 목에 하얀 깃털이 난..."
"만일 네 몸에 분홍빛 반점이 난다고 해도 프레드는 너를 사랑할 거야. 바로 너처럼" 마리가 말했어요.
애너벨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도무지 자신이 없었어요.
프레드와 애너벨은 떨어져 있는 동안 걱정을 한다. 갑자기 몸이 아프게 된 프레드는 반점이 생긴 자신을 애너벨이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을 한다. 애너벨은 떨어져 있는 동안 프레드가 다른 거위와 친해질까 봐 걱정을 한다. 사랑을 하면 걱정을 하게 된다. 그 사람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멋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줄까? 많은 걱정들은 경험과 신뢰를 통해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 걱정이 한 번의 신뢰로, 불안함이 한 번의 신뢰로,,, 그것들이 쌓여 단단한 믿음의 고리가 만들어지며 사랑이라는 감정은 힘을 얻는 게 아닐까? 결국 함께 시간을 겪으며 완성되는 게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반짝반짝 빛나고 예뻐서가 아니라 그저 '당신'이라서 좋은 마음인 것 같다. 나도 당신도 동글동글 하고 예쁜 모양이 아니더라도 뾰족한 세모더라도 각진 네모더라도 '사랑'이라면 다 괜찮지 않을까.
사랑은 장점에 끌려 시작되지만 단점을 마주하고도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순간에 깊어진다.
- SNS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