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립니다

by 다토

나는 기다립니다. 어서 키가 크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비가 그치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좋아요.라는 그 사람의 대답을.

[나는 기다립니다] 글/ 다비드 칼리, 그림/ 세르주 블로크



이찬혁 [멸종 위기 사랑]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It's over tonight

God mercy (God mercy on this ground) Where the hell (where the hell is EROS going)

Did you hear that You heard that What's it sound 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Back in the day

불이 만들어지는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왔다네 정말로


작년 겨울 아주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화두는 나의 결혼으로 이어졌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서울 살면서 이제껏 사기 안 당하고 사는 게 신기한 철부지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꺼내며 이런 사랑이야기도 있다고 열과 성을 다해 말했지만 친구들에겐 답답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될 뿐이었다. 어렵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이어지는 관계는 20대 초반까지고 그 이후엔 모든 것이 마음과 더불어 조건이 따라붙는다. 다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다가 세상이 정해놓은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한다. 지금 나의 조건과 상황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내가 찐사랑이라고 믿었던 몇몇의 이야기들은 기저에 깔려있는 계산기가 수없이 돌아간 후 포장된 결과였을까? 마음과 계산기가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인 그럴싸하게 포장된 이야기였을까? 여태 나만 아름답게 믿고 있던 이야기였을까? 너무 조건이라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춰 오히려 사랑을 폄하하는 건 아닐까? 서울로 돌아와 친구들이 던져준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오랜 고민과 방황 뒤에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참고사항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나의 결론은, 인생의 정답은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는 게 맞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모두 똑같이 사는 듯해도 모두가 다르다.

세대가 변해갈수록 점점 더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사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의 가사일을 계획표로 작성해 수행하고 자기에게 할당된 일이 아니라면 곰팡이와 악취가 진동을 해도 그대로 둔다는 기사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며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중요한 삶의 메시지가 과해지면서 메시지의 핵심 가치가 무너지고,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행동과 자율성으로 변모해 간다는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애정과 관심보다는 자기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로, 절대 당하거나 손해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의심에 의심을 덧붙이고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어 내어 언제든 찌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런 모습이 모든 관계에 적용되고 있지만 유독 사랑 앞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넘어지고 까지고 피도 좀 나고 , 멍도 좀 들어도 되는 건데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가 우선시 되다 보니, 낭만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거래처럼 느껴져 사랑이 점점 더 희박해져 간다고 생각 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저울질하게 되는 것도 사랑보다는 조건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에 일조한다. 나 자신이 너무 중요하다 보니, 상대의 단점은 짐이 되고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판단하다 보니 ,세상이 높게 평가하는 기준을 잣대 삼아 상대를 고르게 된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이 점점 상품화되어 가는 것 같다. 조건 중심의 평가, 과도한 비교, 자기중심적 문화가 맞물려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또 한편으론, 사실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선 사랑을 갈망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된 살아남기에 지쳐 포기해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머문다. 멸종 위기에 빠진 사랑. 사랑은 이 거친 세상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세상 속 사랑의 결말은 무엇이 될까.


영화 [헤드윅] OST


존 카메론 미첼 님이 각본, 출연, 감독까지 맡아 만들었으니 완벽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다.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쏟아내 작업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헤드윅을 처음본건 고1 때였다. 밴드음악과 자아실현이라는 키워드는 그 시절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소재였다. 모든 순간을 몰입해서 보게 되었던 그 영화는 성전환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헤드윅’의 삶에 대한 울분과 고통을 음악과 함께 표현한 영화다. 동독 출신의 한스라는 소년으로 태어난 헤드윅은 미국 군인 루터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하기 위해 받은 성전환 수술이 실패하면서 버림받게 된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스는 헤드윅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찾아오는 삶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계속 나아간다. 록밴드 ‘Angry Inch’를 결성하고 작은 바와 식당 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간다. 헤드윅은 자신이 사랑했던 소년 토미에게 노래와 음악을 가르쳐 스타로 키워냈지만 토미는 그녀를 떠나고 그녀의 노래로 세계적인 록스타가 된다. 이에 분노한 헤드윅은 투어를 따라다니며 분노를 표현한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갈망하는 상처 투성이 헤드윅의 이야기. 강렬한 금발머리의 캐릭터도 개성 있는 음악도 너무너무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의 대표적인 곡인 [The origin of love]는 플라톤의 [향연] 중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향연]은 아가톤이라는 젊은 시인의 비극 경연 우승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연회에 참석한 지식인들과 철학자들이 차례로 사랑에 대한 연설을 하자는 제안에 따라 각자의 견해를 나누는 내용이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은 등과 옆구리가 둥글어 전체가 구형이었으며 여덟 개의 팔다리, 두 개의 생식기, 하나의 머리에 다른 쪽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세 종류의 성이 있었는데 남성과 남성이 붙은 인간은 해의 자손이었고, 여성과 여성이 붙은 인간은 땅의 자손, 남성과 여성이 붙은 인간은 달의 자손이었다. 인간은 힘이 넘쳤고 방자하여 신들까지도 공격했다. 이러한 이유로 제우스는 그들을 반으로 나누겠다고 결정한다. 인간들의 힘은 약해지고 동시에 그 숫자는 늘어나서 신들에게 더 유익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본래 상태가 반으로 쪼개졌기에 쪼개진 반쪽은 원래 자신과 한 몸이었던 또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며 하나가 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서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원이다. 온전한 인간을 반으로 갈라 둘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다른 반쪽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이다. 원초적 상태에서 인간은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였기에 그 온전함을 추구하려는 욕망, 완전해지려는 욕망을 우리는 ‘에로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에로스란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갈망이며 그 반쪽을 되찾아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 플라톤 [향연] -


불완전한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찾아내 다시 온전한 한 몸으로 합쳐지고자 하는 열망을 사랑이라고 정의한 그의 상상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표현된 이 곡은 영상과 함께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감상하면 이 곡을 몇 배는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헤드윅]은 나의 세계관을 확장시켜 준 작품 중 하나로 이것 또한 내가 매우 애정하는 작품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고 그것은 남자와 여자일 수도 여자와 여자일 수도 혹은 남자와 남자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성소수자들을 존중 혹은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어쩌면 세상에게 학습된 오만과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처음부터 존재했었던 자연스러운 존재이기에 굳이 특별함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이유가 없다. 소수라고 해서 다른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사랑을 하는 이 세상의 평범한 존재들일뿐이다. 그러니 존중과 배려의 이름을 굳이 붙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플라톤의 [향연]은 아리스토파네스 외에도 사랑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해서 너무 좋았지만 여기에선 멸종 위기에 놓인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기원을 말하는 흥미로운 관점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러 학자들이 사랑에 대한 황홀함과 그를 통한 효율과 효과에 대해 말한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로 흘러 어느 곳에 닿게 될까?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 듯하다. 눈에 띄는 적의와 무관심으로 점점 더 추워지는 잿빛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기로 승리를 바라는 것이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바로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조차 늘 혼자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 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 아이유 -

지금까지 사랑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나의 결론은, 그래도 그럼에도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생의 시간들을 함께 견디고 보듬으며 열심히 나아가고 싶다. 동글동글 예쁜 동그라미가 아니어도 뾰족한 세모더라도 각진 네모더라도 웃으며 다정히 손잡아 줄 수 있는, 세상과는 다른 눈으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신나게 살아보고 싶다.





봉태규&하시시박 님 부부


애정하는 커플 중에 봉태규 님과 하시시박 님이 있다. 하시시박 님의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봉태규 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직접 볼 수 없음이 너무도 아깝고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추측해 보건대 봉태규 님이 단순히 자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봉태규 님 자체가 너무 좋은 사람인 거다. 그의 인터뷰나 저서를 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장항준&김은희 님 부부

장항준 님도 너무 좋은 분이라 생각된다. 장항준 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잘 되었는데 김은희 님 마저 잘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어떤 이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저 긍정적인 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은희 작가님은 잠이 아주 많은 주부였다고 한다. 장항준 감독님은 그런 김은희 작가님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결국 지금의 대작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두 부부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은 나의 가치관을 한번 더 정립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어떤 것들 보다 '사람'에게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이 나에게는 맞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 내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인 것에 나는 가장 큰 가치를 두기로 했다.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은 다비드 칼리 작가님이 한국에 있는 어른 독자들에게 시선과 관심을 받게 된 첫 그림책이다.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기다림들을 의미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랑을 기다린다. 어렵고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함께 세상을 신나게 누벼볼 멋지고 낭만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나의 사랑은 어렵게 시작될 거란 것도 안다. 시작하면 너무 깊은 마음을 상대에게 건넬 ‘나'라는 걸 잘 알아서 어렵다. 마음을 정했다면 불나방처럼 내가 타들어갈 걸 알면서도 뛰어들 '나'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작가의 길이 나에겐 그러했고,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겐 그러 하기에. 그래서 시작이 너무 어렵다. 너무 거창한 듯도 싶지만 내가 결론지은 나는 그런 속성의 무언가인 것이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 가면서도 지독히도 함께일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함께하는 것에 두렵지가 않은 그런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 나의 생에 시간들은 꼭 그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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