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내가 시커먼 곰으로 변한 거야.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그야...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애원하지 않을까? 제발 나를 잡아먹지 말아 줘. 그런 다음 아침밥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볼 것 같아. 당연히 꿀이 좋겠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실 때면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내가 항상 출동(?)을 한다. 며칠 전 아빠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 부모님께서 함께 올라오셨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택시나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날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해드릴 수는 있지만 경험의 중요성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나는 부모님께서 직접 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린다. 처음엔 기계를 부담스러워하셨었는데 이제는 곧잘 하신다. 시골과 다르게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승차권발매기 앞에서 긴장하는 부모님과 함께할 때면 나는 항상 말한다. "내가 평생 옆에서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 그렇지만 아빠랑 엄마가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라고. 경로 우대권 발급을 받을 때 옆에서 코치해 드리지 않아도 순서를 맞춰 다음 또 그다음을 해내실 때면 나는 옆에서 물개 박수를 치며 한껏 칭찬해 드린다. "별거 아니구먼~" 하시면서 나보다 앞장서 지하철 입구를 지나쳐 가실 때면 뭔가 모르게 뿌듯하고 부모님이 그저 귀엽다. 병원에 도착하니 진료 대기실엔 보호자가 1명만 가능해서 엄마는 병원 로비 만남의 광장에서 기다리고 내가 아빠를 따라가기로 했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엄마가 드실 커피를 사고 앉으실 자리를 찾고 엄마의 핸드폰 배터리를 확인했다. 엄마에게 커피를 드리고 이따 보자며 쓰담쓰담을 해드렸더니 엄마는 귀엽게 발을 동동 구르신다. 누가 봐도 초2의 감성이다. 사람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대상들과 동화될 수밖에 없다.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퇴직 후 기간제로 일하고 계시는데 주로 초1, 초2를 담당하시다 보니 아주 해맑은 어린아이의 내면을 가지고 계신다. 독서광인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라도 미리 준비해 둘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병원의 기다림은 꽤 길다. 수술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추가 검사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결과는 안정적이었다. 병원에서 최악의 경우까지 말씀해 주셨던 터라 아빠는 많이 긴장하셨던 것 같다. 별거 아니라고, 관리해야 하는 부분들을 발견하는 건 오히려 행운이라고 아빠는 복이 많다고 다독이며 병원 일정을 모두 마쳤다. 엄마를 찾아 광장으로 갔다. 분명 아는 이가 있는 병원이 아닌데 저 멀리 보이는 엄마는 어떤 아주머니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해맑게 그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네는 엄마. 응원과 걱정과 사랑을 주시는 엄마. 두 분은... 초면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까지 10분의 시간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동안 나는 서둘러 주변을 스캔한 후 그동안 사드렸던 목록에 없는 가게를 골라 종류별로 1번부터 15번까지 맛보실 수 있도록 도넛을 담았다. 버스에 오른 후 자리에 앉으시는 걸 유리창 너머로 확인할 때까지 손을 흔들고 그제야 나는 돌아섰다. 가장 가까운 곳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냉수인 양 들이켠 후에야 눈이 똑바로 떠졌다. 부모님과 나. 보호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다음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셋 중에(나는 삼 남매 중 둘째다.) 내가 최고지? 어디 가서 자랑 많이 해도 돼!!"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장난스러운 맞장구를 기대했는데 엄마는 예상치 못한 담백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아빠랑 내려오면서 도넛 하나 몰래 먹었어. 너무 맛있더라~ 그리고 아빠가 그러시더라. 우리 딸은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 꼭,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괜히 코끝이 찡했다.
부모님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다. 아빠의 말씀도 얼른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라기 보단, 정말 '좋은 사람'이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신 거다. 결혼도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이기 때문에 옆에서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긴 하시지만 단 한 번도 강요하신 적은 없으시다. 소위 말하는 배우자의 조건이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신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열심히 책임지며 살아내고 있는 삶이기는 한데 나의 모든 선택들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스로를 반듯하게 키워 내려고 나름 노력하며 살긴 했지만 너무 요령이 없었던 건 아닐까 흔들리기도 한다. 심리 검사를 하면 항상 자기 확신에 대한 점수가 월등히 높게 나오는 나였는데 이제는 조금 지친 마음인 걸까? 복잡한 생각도 어지러운 마음도 내려놓고, 일단 눈앞에 놓인 목표에만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힘들긴... 하다. 또래의 친구들과는 다른 선택들을 하며 여기까지 왔고, 그 결과에 아직 닿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냥 한다. 그래도 그냥 하고 또 하고 있다. 그냥 제자리에 머물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또 한다. 나는 어디쯤 왔을까?
그럼 당신이 눈을 뜨니까 내가 작은 벌레로 변해서 당신 코 위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러면 어떡할 건데?
한번 날아봐. 그러겠지? 아하! 여행을 떠나면 되겠다. 비용이 반으로 줄 테니 말이야. 당신을 위해 작고 예쁜 침대도 만들어 줄게. 그리고 살며시 입 맞추는 연습도 해야겠다. 행여나 당신이 다치면 안 되니까.
힘차게 내달리다가 한 번씩 꼭 아프다. 목표를 정하면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그때마다 너무 아프다. 지금도 아프다. 목이 아프고 열이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충분히 쉰 것 같은데 내 몸은 자꾸 브레이크를 건다. 내가 과한 걸까 내 몸이 약한 걸까? 내가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초록초록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했건만, 나는 아직 무리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좀 더 완만한 길을 놔두고 경사도가 직각인 이 힘든 곳을 왜 굳이 굳이 올라서려 하는 걸까? 이렇게 아플 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 하게 해 주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기도 한다. 조용히 실용음악 학원을 검색해 본다. 하고 있던 일에 지칠 때, 아플 때 다른 좋아하는 일을 던져주면(?) 금세 회복되는 아이러니. 분명 육체적으로는 무언가를 추가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아지는 걸까? 너무 좋다는 감정이 모든 걸 이기는 걸까? 진통제 같이 모든 것을 완화시켜 주는 걸까? 참 신기한 원리로 작동되는 나란 사람이다. 아플 땐 엄마도 보고 싶고 서러운 마음도 한가득 올라온다. 나는 왜 이리도 사서 고생을 하는가? 문득 나같이 답이 안 나오는 사람을 예쁘게 보아줄 태평양 같이 넓은 이가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본다. 어찌 되었건 나는 어디로 흘러가 누구에게 닿게 되려나? 나도 나의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럼 공원을 함께 걷다가 당신이 뒤돌아 보니까 내가 커다란 나무로 변한 거야. 말하는 여자 나무가 된 거지.
음... 그렇다면 이 집을 팔고 그 나무 옆에 텐트를 치고 살 거야.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옷을 가지마다 걸어 줄게. 내가 나무는 좀 타는 편이잖아.
나는 운명, 인연 이런 것들에 마음이 몹시 동요되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연인 걸까 싶은, 신기한 우연이 일어났던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돌이켜 보니 우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냥 세상이 좁은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어느 정도 환상을 접어두기로 했다. 우연은 어디서든 일어난다. 그 우연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의 여부가 운명론에 힘을 싣기도 그저 흘려보내는 추억의 조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운동을 하다 알게 된 사람이 과거 단체 사진 속에서 우연히 함께 찍힌 것을 발견하고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기억도 나지 않고 딱히 신기하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알았던 다른 학교 친구를 성인이 된 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와 나는 서로 조금 묘한 감정을 주고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외에도 몇몇의 사람들과 우연이란 것이 종종 일어났던 것 같다. 나는 신기하다 생각하며 가벼운 관심을 가지기도 그저 흘려보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수많은 우연 중에 주선자가 하늘인가 싶은 관계가 있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나는 의미를 부여해 버렸다. 상상 속에서 소설을 몇 편 써내려 갔다는 것을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쓸데없이 자꾸 긴장하게 되는 내 마음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끝끝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뭐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나간 시간 속 어느 순간에. 그러했던 기억이 있다.
있잖아. 내가 깔끔한 걸 좋아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 좋겠어?
당신이 너무 깔끔하면 내가 당신이 남긴 음식 먹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그건 좀 곤란한데...
[행복한 질문] 그림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코쿤님이 떠올랐다. 그가 나오는 영상을 보다 보면 뭔가 마음이 편해진다. 화려한 연예인들 속에 있을 때도 결국 마지막 시선은 그를 향하게 된다. 나는 그의 팬이 아님에도 그가 하는 말을 한번 더 곱씹어 보게 된다. 그는 사람을 따뜻하게 볼 줄 아는 여유와 다정함을 지녔다. 그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화를 내는 일이 없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노력에 대한 강연도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 꽤나 멋있다.
"노력이 우리를 배신할 때도 있지만 슬퍼하지 마세요. 물론 힘든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슬픈 일일 수 있지만 결국엔 더 큰 힘듦이 뒤에 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이유가 돼요. 그래서 슬퍼할 이유가 없어요. 그냥 조금만 더 하면 돼요. 지금까지 노력한 것보다 조금만 더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한 거를 소홀히 하는 순간 후회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미친 듯이 나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지만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결국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배울 점이 있는 다정한 사람을 원하지만 상대가 언제나 옳고, 멋지기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모든 상황에서 능숙하고 멋지고 정답일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서툴지만 다정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함께 서로를 예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랑이란 것은 나를 애써 꾸며내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하고 편안할 수 있는 마음인 것 같다.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쁘게 보아줄 수 있는 다정함인 것 같다.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가 좋은 마음이라면 그 무엇이 사라졌을 땐 변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때문에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다정히 바라봐 주는 마음이라 정의 내리기로 했다. 사랑이라는 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다.
[행복한 질문] 그림책 속 질문들의 기저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내가 마음껏 엉뚱함을 쏟아내도 이 사람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질문들.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사랑의 태도에서 비롯된 모든 마음들. 그런 것들이 가득했기에 편안한 미소로 감상할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 모든 그림책의 기본값은 다정함이다. 주제도 표현도 가지 각색이지만 기저엔 모두 누군가를 위한 다정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그림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즐기고 행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따뜻함이다. 이런 다정함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계속해서 나의 걸음을 걸어 나가볼 생각이다.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작은 토닥임이라도 건넬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마음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힘내서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기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 우리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