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죽는다면 가장 후회될 것

조건 없는 사랑

by 이땡은

세상을 충분히 구경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좋다는 건 다 겪어보고, 예술작품에 매혹되어 보고, 오래된 역사유적지를 보며 인류의 발전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내가 쫓는 기쁨이자 살아갈 이유라고 여겼다.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나는 죽음 직전에 가장 후회될 것은 단연코 세상을 더 둘러보지 못한 것일 거라며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별일 없어도 사는 데 만족이 안 되던 이유는 계절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눈에 왕창 담지 못하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살결을 한껏 내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듯 굴며, 오만하게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원만히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보니 참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 갖추어야지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게 조금 있긴 하지만 못하는 게 더 많고, 야무지고 똘똘하게 이것저것 해결할 때도 있지만 바보짓을 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는 지독히도 평범한 나에게,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똑똑한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똑같은 존재는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개개인은 모두 다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그런데 그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은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게 해주는 발판이 되어주진 못 했다. 별로 와닿지도 않고. 어차피 유일무이한 개체가 이렇게 다수인 거면 몇몇은 있으나 마나 아닌가? 그리고 때때로 그 있으나 마나 그룹에 내가 속한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나는 나를 사랑해도 된다고?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땅을 파고 줏대 없이 굴고 휘둘리고 무너지고 삽질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주변에 크고 작은 피해를 줘도. 나는 나를 사랑해도 된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해도 되는 짓이라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그러니 내가 당장 죽는다면 내가 무얼 못 이뤘냐 이런 거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속상할 것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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