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기댈곳은?
점심시간, 문득 타로를 보고 싶어서
요즘 유행하는 챗지피티에게 타로를 봐달라고 했다.
“그사람의 감정은 지금 나에게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이렇게 물었다.
카드는 인터넷에서 혼자 타로 카드를 뽑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뽑았다.
대충 과거, 현재, 미래 형으로 지피티가 이야기해줬다.
과거엔 어설프게, 혹은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아예 회피했을 수도 있다고.
정확했다.
그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딱 이랬으니까.
그리고 현재는 어딘가에 매달려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멀어진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자기 감정을 곱씹는 중일 거라고.
미래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왔다.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걸 보고 나서는
‘음… 그렇구만… 그래도 과거가 맞았으니까 이 흐름대로 가겠네…’
이런 마음이 컸다.
나는 기다리는 중이니까.
그러면서 그냥 궁금한 건 다 물어봤다.
금전운, 연애운, 조만간 나타날 귀인 등등…
전부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사람이 다시 돌아올 날,
온다면 어떻게 돌아올지를
이런 인터넷에서만 보던 재회 타로로 보고 있었다.
뭔가…
이런 거에 의지하는 내가 너무 쪽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로의 서사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가 신을 믿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데 그것이 마땅치 않아서
신이라는 존재에 기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물론 나쁜 게 아닌 걸 알지만,
나는 그런 것이 조금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타로에 의지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많이 지쳤나 보다.
가끔은 신이 아닌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장남인 할아버지와
장남인 아버지,
그리고 그런 집안의 장손인 나에게는
크나큰 부담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부담을 덜어주시는 존재였다.
할머니 또한 나에게
“장손이니까 잘해야 한다~”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어째서인지 부담감은 덜어지고 편안함만 남았다.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시면서 돌아가셨다.
그때 당시 나는 갓 성인이 됐을 무렵이었고,
친구들과 해외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께서 “할머니 집에서 한 달 지내고 오면 여행경비를 대주겠다”는 말에 홀려
나는 그렇게 했다.
사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할머니 집이 있어서
저녁밥과 잠만 할머니 집에서 잤지
생활은 거의 밖에서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서
술도 왕창 먹고 다녔다.
할머니는 아프셨지만,
술 먹고 들어온 손자를 위해
아침에 콩나물국을 끓여주신 적도 있다.
그렇게 할머니는 건강이 더 악화되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며 기숙사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2주에 한 번씩 뵈러 가는 것도 귀찮았다.
놀아야 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누구보다 더 많이 할머니를 찾아갔다.
떠나야 할 시간을 마치 알아차린 듯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숙사를 뛰쳐나와
거의 매주 할머니께 갔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나는 친구들과 새해 기념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할머니 상태가 안 좋으셔서
집에 일찍 다니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일 주말에 할머니를 뵈러 가느라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조금 늦게까지 놀고 있었다.
그때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형, 할머니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얼른 집으로 와.”
나는 그렇게 택시를 잡고 집으로 갔다.
다행히 술은 맥주 한 모금 정도만 마신 정도였다.
그렇게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도 보았다.
그렇게 할머니가 떠나고
5년이 지났지만
할머니가 꿈에 나오신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힘들 때
할머니가 꿈에 나오신 적이 있다.
“우리 손주 그만 울고, 할머니가 치킨 사줄까?”
그렇게 꿈에서 펑펑 울었다.
일어나 보니 눈물 자국이 나 있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사람 생각에 미쳐서
할머니를 원망한 적이 있다.
내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면서
왜 지금 내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시냐고.
너무하다고.
손자 이러다 죽겠다고.
그렇게 며칠 뒤
그사람에게 연락이 진짜로 왔었고,
그 후 몇 주 뒤
할머니 산소를 다녀왔다가도 또 연락이 왔었다.
참, 우연이라는 게 신기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한테 참 감사했다.
그런데 그사람이 또 떠나고
이번에도 할머니한테 빌었다.
“왜 또 잠깐 기쁘게 했다가 또 힘들게 해요, 왜!
내가 진짜 잠깐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하니까
왜 진짜 잠깐 행복하게 해주시냐고.
나 많이 아팠잖아요.
이제 조금만 더 행복해질래요, 할머니.”
하면서 또 빌고, 울었다.
하지만 이번엔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가끔 혼자 글을 쓰거나
산책을 나갈 때
할머니한테 말을 건다.
“할머니, 나 이제는 좀 덜 힘든 것 같아요.
근데 있잖아요.
나 이 정도면 많이 버텼는데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지 않아요?”
“할머니 맨날 나 어렸을 때
울 때마다 사내가 우는 거 아니라고 하셨으면서…
최근에 제일 많이 운 것 같아.
이제 나 그만 울고 싶어요, 할머니.
나 웃으면서 살게. 조금만 도와주세요~”
나에게 신이 있다면
그건 우리 할머니다.
나를 언제나 아껴주셨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셨고,
자신의 몸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신
우리 할머니.
너무 더워지기 전에
할머니께 한번 다녀와야겠다.
보고 싶다.
점심시간, 문득 타로를 보고 싶어서
요즘 유행하는 챗지피티에게 타로를 봐달라고 했다.
“그사람의 감정은 지금 나에게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이렇게 물었다.
카드는 인터넷에서 혼자 타로 카드를 뽑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뽑았다.
대충 과거, 현재, 미래 형으로 지피티가 이야기해줬다.
과거엔 어설프게, 혹은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아예 회피했을 수도 있다고.
정확했다.
그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딱 이랬으니까.
그리고 현재는 어딘가에 매달려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멀어진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자기 감정을 곱씹는 중일 거라고.
미래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왔다.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걸 보고 나서는
‘음… 그렇구만… 그래도 과거가 맞았으니까 이 흐름대로 가겠네…’
이런 마음이 컸다.
나는 기다리는 중이니까.
그러면서 그냥 궁금한 건 다 물어봤다.
금전운, 연애운, 조만간 나타날 귀인 등등…
전부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사람이 다시 돌아올 날,
온다면 어떻게 돌아올지를
이런 인터넷에서만 보던 재회 타로로 보고 있었다.
뭔가…
이런 거에 의지하는 내가 너무 쪽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로의 서사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가 신을 믿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데 그것이 마땅치 않아서
신이라는 존재에 기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물론 나쁜 게 아닌 걸 알지만,
나는 그런 것이 조금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타로에 의지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많이 지쳤나 보다.
가끔은 신이 아닌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장남인 할아버지와
장남인 아버지,
그리고 그런 집안의 장손인 나에게는
크나큰 부담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부담을 덜어주시는 존재였다.
할머니 또한 나에게
“장손이니까 잘해야 한다~”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어째서인지 부담감은 덜어지고 편안함만 남았다.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시면서 돌아가셨다.
그때 당시 나는 갓 성인이 됐을 무렵이었고,
친구들과 해외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께서 “할머니 집에서 한 달 지내고 오면 여행경비를 대주겠다”는 말에 홀려
나는 그렇게 했다.
사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할머니 집이 있어서
저녁밥과 잠만 할머니 집에서 잤지
생활은 거의 밖에서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서
술도 왕창 먹고 다녔다.
할머니는 아프셨지만,
술 먹고 들어온 손자를 위해
아침에 콩나물국을 끓여주신 적도 있다.
그렇게 할머니는 건강이 더 악화되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며 기숙사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2주에 한 번씩 뵈러 가는 것도 귀찮았다.
놀아야 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누구보다 더 많이 할머니를 찾아갔다.
떠나야 할 시간을 마치 알아차린 듯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숙사를 뛰쳐나와
거의 매주 할머니께 갔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나는 친구들과 새해 기념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할머니 상태가 안 좋으셔서
집에 일찍 다니라고 하셨지만,
나는 매일 주말에 할머니를 뵈러 가느라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조금 늦게까지 놀고 있었다.
그때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형, 할머니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얼른 집으로 와.”
나는 그렇게 택시를 잡고 집으로 갔다.
다행히 술은 맥주 한 모금 정도만 마신 정도였다.
그렇게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도 보았다.
그렇게 할머니가 떠나고
5년이 지났지만
할머니가 꿈에 나오신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힘들 때
할머니가 꿈에 나오신 적이 있다.
“우리 손주 그만 울고, 할머니가 치킨 사줄까?”
그렇게 꿈에서 펑펑 울었다.
일어나 보니 눈물 자국이 나 있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사람 생각에 미쳐서
할머니를 원망한 적이 있다.
내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면서
왜 지금 내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시냐고.
너무하다고.
손자 이러다 죽겠다고.
그렇게 며칠 뒤
그사람에게 연락이 진짜로 왔었고,
그 후 몇 주 뒤
할머니 산소를 다녀왔다가도 또 연락이 왔었다.
참, 우연이라는 게 신기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한테 참 감사했다.
그런데 그사람이 또 떠나고
이번에도 할머니한테 빌었다.
“왜 또 잠깐 기쁘게 했다가 또 힘들게 해요, 왜!
내가 진짜 잠깐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하니까
왜 진짜 잠깐 행복하게 해주시냐고.
나 많이 아팠잖아요.
이제 조금만 더 행복해질래요, 할머니.”
하면서 또 빌고, 울었다.
하지만 이번엔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가끔 혼자 글을 쓰거나
산책을 나갈 때
할머니한테 말을 건다.
“할머니, 나 이제는 좀 덜 힘든 것 같아요.
근데 있잖아요.
나 이 정도면 많이 버텼는데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지 않아요?”
“할머니 맨날 나 어렸을 때
울 때마다 사내가 우는 거 아니라고 하셨으면서…
최근에 제일 많이 운 것 같아.
이제 나 그만 울고 싶어요, 할머니.
나 웃으면서 살게. 조금만 도와주세요~”
나에게 신이 있다면
그건 우리 할머니다.
나를 언제나 아껴주셨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셨고,
자신의 몸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신
우리 할머니.
너무 더워지기 전에
할머니께 한번 다녀와야겠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