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멀쩡하다고?
나는 수원시 화서동에 있는 경인지방병무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쳤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교복을 입고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었다. 이젠 각기 다른 대학교 학생이 되어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체검사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시작됐다. 검사에 적합한 복장을 입고 슬리퍼를 신어야 했는데, 내 짧은 왼다리로 인해 왼발을 약간 까치발로 들고 걷는 모양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덩치 큰 공익요원이 아무런 설명도 듣지 않고 내 어깨를 꾹 눌러 키를 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왼다리가 짧아 골반이 기울어져 있다는 걸.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키가 측정됐고, 결과는 납득할 수 없는 172cm. 실제로는 176cm인 내 키가 확 줄었다. 억울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음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인지능력 검사였다. 메뚜기 종류를 100가지 이상 안다는 항목에 ‘예’를 선택하면 상담이 불려지는 식의, 다소 엉뚱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넓은 컴퓨터실에서 다같이 검사를 받고 있는데, 검사 도중 몇 명이 불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걔네들은 메뚜기 100종류 이상을 진짜 알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각 과의 의사들과 대면 상담이 시작된다. 먼저, 시력이나 비염 같은 자잘한 질환을 확인했다. 내 시력이 꽤 낮아 3급에 해당했다. 1급~3급은 모두 현역이라 똑같은 취급이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형외과 의사와 대면했다. 의사는 특이사항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나의 왼손을 꺼내 보였다. 의사는 말없이 내 손을 한 번 쓱 만져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면제네요.”
그 짧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깔끔함을 넘어서는 사무적인 느낌마저 드는 빠른 결정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나면 본인의 병역 판정 결과가 안내된다. 앞서 검사를 마친 사람들에겐 "띠리링, 현역 입영 대상입니다"라는 멜로디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스피커에서 들려온 음성은 이랬다.
“띠리링, 5급 전시근로역입니다.”
훈련소에도 가지 않고, 예비군 훈련도 면제되는 사실상 병역면제 판정이었다. 문제는 ‘5급’이라는 숫자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갑자기 병무청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내가 “5급으로 면제를 받았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왜 6급 면제가 아니냐”며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의 오지랖이 병무청 로비를 울리고 있었다.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우리 부자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피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병무청 직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왜 6급 면제가 아니라 5급이냐고. 하지만 사실 5급과 6급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병역면제’에 포함된다. 다만 6급은 거의 중증장애에 해당하는 수준이고, 평범하게 일상생활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보통 5급을 받는다. 난 걷고, 잘 먹고, 잘 싸니까 5급 판정은 적절했다. 아버지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아들을 더 편한 곳으로 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겠지만, 난 친구들 눈치 보느라 바빴다.
아버지의 고집과 성화에 결국 나는 추가 검사를 받게 됐다. CT를 찍어 다리 길이 차이를 정확히 측정해 보기로 한 것이다. 병무청은 우리 아버지를 진상 민원인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고, 나 역시 팬티만 입고 찍는 ct는 괜히 민망하고 번거로운 절차였다.
검사 결과, 나의 두 다리 길이 차이는 5cm에 육박했다. 다리 길이 차이가 5cm를 넘기 시작하면 보행에도 큰 무리가 오고, 일상생활의 피로도도 커지기 때문에 뼈를 늘리는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발가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을 때, 이 수술에 대해서도 들었다. 어느새 5cm로 늘어난 길이 차이로 상심하고 있을 무렵 병무청 직원이 우리 부자를 불렀다. 그렇게 CT까지 찍고 나서도 내 최종 판정은 변하지 않았다.
“5급 전시근로역. 그대로입니다.”
난 빠르게 수긍했고, 아버지도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다소 씁쓸하게 남았다. 이후 누군가 내게 군대를 어디 다녀왔냐고 묻는 일이 종종 있었다. 면제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으로 되묻는다.
“어? 멀쩡해 보이는데? 어디 안 좋으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는다. 겉으로 멀쩡해 보인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나는 그저 평생을 이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 뿐인데. 그 사실이, 가끔은 서럽게 스며든다. 왼손과 왼다리. 나의 아픈 손가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