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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은 섬섬옥수

by 김건우

내 기억은 내가 태어났던 수원의 작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단편적이다. 내 기억 속 왼손은 처음부터 세 손가락이 갈라져 있었다. 태어났을 땐 손가락이 모두 붙어있었지만, 세 살 무렵 수술을 받아 지금처럼 갈라진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수술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다.


이 세 손가락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엄지, 검지, 중지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엄지, 중지, 약지일 수도 있겠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없다. 특히 검지는 중간 마디가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고, 뼈가 단단하게 굳어 펼 수도 없다. 마디마다 뼈가 기형적으로 자라서, 손가락 전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수술 당시 손가락 사이의 부족한 피부를 보충하기 위해, 사타구니에서 피부를 떼어와 이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왼손 손가락 사이엔 어두운 피부색이 자리 잡고 있고, 만질 때마다 거친 감촉이 전해진다. 나에게 이 왼손은 늘 콤플렉스였다. 딱 보면 티라노사우루스의 앞다리처럼 생겼다. 반면 오른손은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 왼손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른손만 보고 섬섬옥수라며 칭찬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속삭임은 언제나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내 왼손을 주머니 속에 숨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이 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손은 나의 삶의 일부다. 아무 말없이 지금도 나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나는 말을 빠르게 뗐다. 걷는 시기도 또래와 비슷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안도했을까? 만약 그 순간 기뻐하지 않았다면 나는 꽤나 삐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내게 한글을 열심히 가르쳐주셨다. 집 안 벽에는 자음·모음 플라스틱 판이 붙어 있었고, 몬테소리 교육 전집도 들여놓으셨다. 때때로 방문 선생님이 집으로 와 함께 책을 읽고 글자를 익히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세 살 무렵에 이미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뜻도 모르는 채 어려운 책을 읽고, 아버지 차를 탈 때면 지나가는 간판들을 또박또박 읽으며 좋아했다.


이 시기까지 나는 나의 왼손과 왼발에 대해 특별히 의식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어머니 품에 안겨 있을 때면,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건우야. 넌 왼손이 이래서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건우를 제일 사랑해."


그 다정한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또렷이 남아 있다. 아마도 어머니는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거겠지.


어느덧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었다. 내 기억 속에 '섭리유치원'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던 유치원이었는데, 그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단지 그곳 선생님들이 특이한 옷을 입는다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 엄마 앞에서 울고불고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유치원 봉고차가 골목 어귀에 나타나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엄마는 처음엔 엄하게 소리치다가 나중엔 지쳐서 나를 어르고 달랬다. 결국 엄마와 선생님이 내 팔다리를 붙잡고 봉고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차 문턱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버텼지만,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악을 쓰며 차에 밀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어이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결국 차 안에서 체념한 채 앉아있었다. 그 시절 나는 정말 어지간한 떼쟁이였다.


유치원 마당의 풀 냄새, 나무 그늘 아래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놀이실에 마련되어 있는 다양한 교구들, 황토색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풍기던 희미한 책냄새까지—섭리유치원의 모든 것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특히 유치원 체육대회가 기억난다.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하고, 공굴리기 시합을 하며 행복했던 기억. 옷감에 샛누런 황토물을 들이는 활동도 했었다. 어린 내게 물든 옷감은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물건이었다. 누렇게 물든 손을 보며 까르르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햇살 아래 반짝이던 엄마의 미소까지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유치원 시절부터 나는 꽤 고집스러운 아이였다. 하루는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너 옛날에 유치원에서 친구들 다 활동하는데, 너만 중간에서 대자로 뻗어 누워 있었던 거 기억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그랬어? 참 별난 놈이었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그날도 아마 어김없이 떼를 썼던 모양이다. 유치원 선생님께 혼이 나고 벽을 보고 서 있으라는 벌를 받았다. 나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섰고, 벌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오줌이 마려왔다는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선생님께 다가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숫기가 없었고, 사회성도 부족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서 있는 채로 오줌을 싸버렸다.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눈앞 벽만 보며 느낀, 몸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액체의 감각을 느꼈다. 밤중에 자면서 실수한 것과는 다른, 생생한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당황하셨고, 얼른 내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혀 주셨다. 엄마는 유치원 전화를 받고 어이없어했다.


“벽 보고 있으라니까 가만히 서 있다가 오줌을 쌌대. 말도 안 하고.”


그때 엄마는 나를 정말 특이한 애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내가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폐원한 섭리유치원이지만 내 마음속에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작은 낙원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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