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와 개똥이

나의 동물 연대기

by 김건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동물을 키우며 자랐다. 제일 처음 기억나는 동물은 3살 무렵부터 키웠던 붉은귀거북이었다. 이름도 없던 그 거북이와 나는 나름의 유대를 쌓고 있었다. 얼마나 가까웠냐면, 나는 거북이와 뽀뽀를 하다가 입술을 물려버릴 정도였다. 그날 거북이를 입술에 매단 채로 울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입술보다 거북이가 매달린 내 얼굴을 보고 한바탕 웃으며 사진부터 찍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그러다 거북이는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5살이던 내 동생이 ‘거북이 밥’을 준다며 과자 ‘사또밥’을 어항에 몽땅 쏟아부은 것이다. 우유 성분이 들어간 그 과자가 물에 불어 터지면서 어항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거북이는 끝내 견디지 못했다. 이처럼 동물을 키우는 일은 대개 죽음으로 끝난다. 햄스터를 키우다 겨울에 얼려 죽인 적도 있었고, 어미 햄스터가 새끼들의 머리를 씹어먹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생명의 세계는 참으로 잔혹하고, 또 무심하다.


식용 달팽이도 키워봤다. 무럭무럭 자라 사람 손바닥만 하게 자란 달팽이는 어느 날 사육통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여름 햇빛 아래, 베란다에는 달팽이 껍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혼자 탈출을 감행했다가 햇볕에 말라 죽었으리라.


학교에서 받아온 장수풍뎅이는 유충부터 성충까지 직접 키우며 과일 젤리를 먹이고, 나무껍질로 집도 꾸며줬다. 그런데 어느 날, 장수풍뎅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그 웅장한 머리가 ‘툭’ 하고 떨어졌고, 그 안에서는 개미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여름철 개미의 습격이었다. 그 참혹한 현장은 결국 엄마가 처리해주셨다.


애정 깊게 키웠던 첫 동물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데려온 고슴도치 ‘개똥이’였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내리면 의외로 얼굴이 귀엽게 생겼다. 길다란 코끝과 땡그란 눈이 보는 이의 심장을 녹인다. 핸들링을 통해 사람 손길에 익숙해지면 가시를 내리고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나는 겁이 많아 쉽게 만지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개똥이와의 핸들링에 성공했다. 핸들링을 할 때면 개똥이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깨물곤 했다. 욕실 세면대에서 목욕도 시켜줬다. 개똥이는 탈출의 달인이었다. 매일 같이 사육장을 탈출하여 냉장고 밑에 숨기 일쑤였고, 찾아서 꺼내주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탈출의 비결은 바로 개똥이의 롱다리. 동글동글한 인상과 다르게 고슴도치는 몸을 쭉 늘이면 생각보다 길쭉하다. 개똥이는 5년을 살다가 감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왔다. 생후 3개월의 말티푸였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덩치에 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모습이 털뭉치를 연상시켰다. 어머니 친구네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였는데, 형제들 중 유난히 약한 녀석이었다. 형제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모습에 어머니 친구 분이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왔고, 그 귀여운 모습에 반해 그날로 카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카이’. 동생이 별 뜻 없이 지은 이름이지만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그 아이를 카이라고 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개를 무서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카이와 라포를 쌓아갔다. 개를 만지는 게 별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강아지는 그동안 키운 어떤 동물과도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애완동물이 아니라, 진짜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카이와 감정적 교류가 가능했고, 카이 스스로도 나름의 감정 표현을 했다. “산책 갈까?” 하면 가슴줄부터 찾고, “까까 줄까?” 하면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것이 영락없는 사람 같았다. 물론, 가끔 침대나 옷 위에 똥오줌 테러를 저지르긴 했지만, 카이는 우리 집에서 제일 사랑받는 막둥이가 되었다.


강아지마다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카이의 성격은 매우 내성적인 편이다. 모르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했다. 한 번은 어머니가 아버지인 줄 알고 현관문을 무심코 열었는데, 문 앞엔 택배를 배달하던 쿠팡맨이 서 있었다. 카이는 그 쿠팡맨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손을 물었고, 결국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크게 다쳤다. 배달 기사는 병원에 입원까지 했고, 보험 처리를 해야 했다. 법적으로 반려견은 우리 가족의 재산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마치 베란다 발코니에 있던 화분이 떨어져 보행 중이던 행인에게 맞아 다치게 한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을 들었다. 결국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당시엔 꽤 걱정거리였다. 이후에도 지나가던 아저씨가 “우쭈쭈 귀엽네~” 한마디만 해도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달려들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에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우리 가족의 책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강형욱 씨의 프로그램을 보고 적용해봐도 쉽지 않았다. 역시 내 새끼 교육이 제일 어렵다.


그런 카이가 올해로 벌써 열두 살이 되었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동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카이는 요즘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얼굴엔 하얀 털이 늘어나고, 어느새 ‘할아버지 개’가 되어 있었다. 내 목표는 카이를 세계 최장수견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현재 기록은 만 29년 5개월을 산 호주 개라고 한다. 앞으로 20년은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하는 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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