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헬보이를 꿈꾸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곳은 교대생 시절의 ‘코리아나 헬스장’이었다. 삐걱거리는 낡은 기구와 오래된 공기 속에서 묘한 낭만이 느껴졌다. 하지만 졸업 후 평택에서 근무할 때는 긴 통근길에 지쳐 헬스장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집에서 맨몸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 내 몸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빼빼 마른 데다 왼팔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팔굽혀펴기조차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100회를 목표로 매일 팔굽혀펴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두세 개밖에 못 했지만, 조금씩 근력이 붙더니 어느 순간 한 번에 10개를 해내는 날이 왔다. 그 순간의 기쁨은 잊을 수 없다. 다만 내 왼손, 코딱지만 한 악력을 극복하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팔굽혀펴기 다음으로는 턱걸이에 도전했다. 난이도는 훨씬 높았다. 세 손가락뿐인 왼손으로는 철봉을 잡고 버티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악력이 약해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혹시 궁금하다면, 세 손가락으로만 덤벨을 들어보라.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가장 두꺼운 보조 밴드를 사고, 왼손에는 스트랩까지 감아 겨우 한두 개씩 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마다 시도하고 반복한 끝에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보조밴드 없이 턱걸이를 해봤다. 놀랍게도 내 몸이 스르륵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그날의 짜릿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무렵 집 근처 헬스장에 등록했다. 등록과 동시에 150만 원짜리 30회 PT도 결제했다. 신기하게도 헬스장에서는 왼손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괜찮았다. 평소엔 길을 걸을 때조차 왼손을 숨기곤 했지만, 운동할 때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을 반복해 습관이 되었고, 어느덧 헬스장에 다닌 지도 2년이 넘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내 왼손을 본 회원들, 특히 전성기 아놀드 슈워제네거급 아저씨들이 종종 안타까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수술 자국이나 화상 흔적을 보여주며 소소하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러다 친절히 운동을 알려주며 무료 PT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 아저씨들의 호감을 얻는 비결은 간단하다. 말을 잘 경청하고, “네네!” 대답만 잘하면 된다.
헬스를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거운 쇳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지루한 운동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죽을 듯한 고통 뒤에 밀려오는 개운한 쾌감, 운동 직후 펌핑된 근육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헬스만의 매력이다. 샤워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친해진 아저씨 한 분이 “이제 하체만 좀 더 키우면 볼만하겠는데?” 하고 웃으며 칭찬해줬는데, 그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단숨에 풀렸다.
지금 내 오른팔은 나름 근육도 붙고 제법 보기 좋아졌다. 물론 옷을 입으면 영락없는 멸치 같지만 말이다. 반면 왼팔은 여전히 가시처럼 얇다. 양팔을 나란히 붙여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그래도 멈출 순 없다. 언젠가 오른팔만 더 커져서 헬보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마저도 웃으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단 관리에도 관심이 간다. 나 역시 한때는 ‘득근’을 위해 단백질 보충제와 닭가슴살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아침·점심·저녁마다 닭가슴살을 데우고, 틈날 때마다 쉐이크를 마시며 단백질 섭취에 매달렸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단백질 보충제는 입에 도저히 맞지 않았고, 닭가슴살만 먹는 식사는 점점 우울해졌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먹는 즐거움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결국 식단 관리는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식생활로 돌아왔다.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운동을 병행하는 지금의 방식이 오히려 나에겐 더 잘 맞는다. 진지하게 벌크업을 하려면 여러 끼로 나눠 단백질을 보충해야겠지만, 나는 거기까진 하지 않는다. 대신 점심에 급식을 두 번 리필해 먹고, 저녁도 푸짐하게 챙긴다.
운동 전후로 먹는 식사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몸이 무거워지면 운동 퍼포먼스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먹는 즐거움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든든하게 먹고, 땀 흘리며 운동하고, 샤워 후 개운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이 루틴. 그것이 요즘 내 삶의 가장 큰 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