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채로 버틴 청춘의 기록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 비염, 천식까지 ‘알레르기 3종 세트’를 달고 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했던 건 아토피였다. 밤마다 온몸이 가려웠고, 팔과 다리가 접히는 부분은 피가 날 때까지 긁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침대 시트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날이 다반사였다. 알레르기만이 아니었다. 선천적인 장애에 더해 각종 질환까지 달고 살았으니, 내 몸은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다.
비염도 심해서 동네 이비인후과의 단골이었다. 코를 자주 풀다 보니 코밑이 헐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고, 수업 시간에도 무심코 코를 킁킁대는 습관이 붙었다. 중학생 때 알레르기 항원 검사를 받아봤더니 ‘집먼지진드기’가 주요 항원으로 나왔다. 문제는 이놈들을 완전히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성인이 되면 아토피가 조금은 나아진다던데, 나는 아직도 성인 아토피와 비염으로 고생 중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잘 스프레이를 뿌리고,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알레르기 약을 빠짐없이 챙겨 먹는다. 관리만 잘하면 조금은 나아지지만, 약을 끊는 순간 금세 제자리다. 덕분에 약봉투와 함께 사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천식은 어린 시절 이후로는 심하게 앓은 적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따로 있다. 바로 탈모다. 솔직히 말해, 내가 대머리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릴 적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였는데, 할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대머리였다. 그때 나는 ‘남자는 나이 들면 원래 머리가 빠지는 거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설마 내 20대에 그 운명이 앞당겨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탈모의 전조는 스물여섯 무렵 찾아왔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정수리가 휑해 보였다. 그때 바로 약을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정수리니까 머리숱이 좀 적은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년 뒤, 정수리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거울 속 휑한 정수리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고, 그 모습은 스스로 봐도 참 흉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나는 그때부터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발이 잘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한 오산의 서울어린이병원에서 탈모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옆머리는 모공마다 굵은 머리카락이 세 가닥씩 자라 있었지만, 정수리는 얇은 모발이 드문드문 박힌 황무지 같았다.
미용실에 가는 일도 큰 스트레스였다. 미용사는 내 얼굴과 정수리를 번갈아 보더니,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조심스레 묻곤 했다. 정수리는 중년인데 얼굴은 청년이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학교에서도 반 아이들이 “선생님, 가발 쓰면 안 돼요?”라며 장난을 쳤다. 결국 스물여덟부터는 흑채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혼자 뿌리다 실수하면 옷소매가 까맣게 얼룩졌다. 여름엔 땀만 나도 흑채가 흘러내릴까 늘 조마조마했다. 이십 대에 흑채라니. 부끄럽지만, 휑한 정수리를 가리려면 방법이 없었다.
약을 꾸준히 먹다 보니 지금은 그 휑한 부분이 예전보다는 조금 덜하다. 흑채 없이 윗머리를 가르마 타서 정수리를 덮으면 그나마 나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가르마를 타면, 정수리의 빈 공간이 내 피부에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 아버지도 40대 이후에 탈모가 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빨리 시작됐을까? 알고 보니 외할아버지도 탈모였다.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골고루 탈모 유전자를 물려받은 셈이다.
젊은 남성들이여. 집안 어르신들 중 대머리가 많다면, 예방 차원에서라도 탈모약을 미리 챙겨 먹어라. 한 번 빠져 휑해진 정수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있을 때 붙잡아야 하는 건 사랑도,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