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교사

곡선 위의 질문들

by 김건우

어렸을 적, 동네 아줌마들이 카페에 가는 일이 있으면, 우리 집 현관 앞엔 슬리퍼들이 줄지어 섰다. 아이들이 콩알처럼 우르르 들어왔고, 나는 그 무리의 맏형이었다. 나는 동생들을 꽤 잘 놀아주었다.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도 만들고, 때로는 수학 선생님이 되어 문제를 내주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엉망진창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마다 엄마 친구들은 “건우가 동생들을 정말 잘 돌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아이들을 돌보는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이 직업이 특별히 뿌듯한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엉뚱한 시절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나를 버럭하게 만들지만, 금세 기발한 행동 하나로 웃음을 주고 마음이 풀어진다. 회복의 방식이 늘 신선하다는 것은 축복이다.

교사로서 편애는 금물이지만, 가장자리부터 먼저 눈이 간다. 교실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서열이 생기고 위계가 잡힌다. 공부를 잘하거나 말주변이 좋고 유머감각이 있는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반대로 특수학급 친구들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낯선 억양을 가진 다문화 학생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나기 쉽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들의 자리를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넣고 싶다. 친구가 없다면 내가 먼저 친구가 된다. 쉬는 시간이면 내 자리로 몰려와 오늘의 발견을 쏟아낸다. 자잘한 이야기들이 내 책상 위에 구슬처럼 굴러다닌다.


다운증후군을 앓던 한 아이가 있었다.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에게 매일같이 놀림을 받던 아이였다. 나는 늘 그 아이 편에 서서, 짓궂은 악동들에게 선을 넘지 말 것을 일러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동생 있어요?”

“응, 남동생이 한 명 있어.”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나이 많아요?”


헉,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발한 질문이었다. 아이들의 질문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어른이 예상하는 답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한 번씩 크게 돌아가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초등교사로서 보람은 그 곡선의 시간 위에 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에게 세계를 처음처럼 가르칠 수 있다. 나도 처음처럼 배운다. 세계 지도에서 대한민국을 찾는 것부터, 친구의 마음이 오늘 어디 쯤에 있는지 알아채는 법까지. 아이들은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대신 어른들이 잊어버린 것을 정확히 안다. 물어보는 용기, 틀려도 웃을 수 있는 태도, 일이 뒤죽박죽이 되어도 괜찮다는 사실.

‘너, 진짜 엉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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