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만든 철학은, 나를 지켜냈는가?”
이 질문은 간단하지 않다.
나의 철학은 책 속 문장이 아니라,
현실과 감정과 사람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은 위로가 되었고,
어떤 철학은 나를 무너뜨렸다.
그러니 이 질문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처음 나는 나의 철학이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너무 유치하다고 비웃지는 않을까?’
혹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철학이라고 느끼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내가 “타인을 무한히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의 순진함 같고, 교과서에서 본 문장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사랑은 얕은 문장이 아니라,
끝없는 상처를 감내하며 꺼내 든 태도라는 것을.
나는 사랑을 실천하려 애쓰다 수없이 좌절했고,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꺼내 들었다.
그 과정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철학은 결코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든 철학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사유했고, 감정을 정제했고,
무수한 질문 끝에서 도달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진심으로 내 철학을 읽고
의견을 나눠준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살아 있는 철학은 닫혀 있지 않다.
철학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 열린 마음이 철학을 성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하나의 고백을 덧붙이고 싶다.
내 철학은 나를 완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나는 늘 타인을 위할 태도를 고민했지만,
정작 내면에서는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감정을 파고들고, 슬픔을 곱씹고,
불안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보호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나를 무너뜨렸다.
무너뜨림 속에서만 철학이 자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나만의 방식이다.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철학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달해야 한다.
나는 고통 속에서 철학을 찾았지만,
당신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는가이다.
나는 여전히 내 철학이 나를 완전히 지켜냈다고 말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했고,
무너짐 속에서 다시 나를 일으켰다.
철학은 멋진 말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