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로부터 2년 후, 6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괴로운 일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에게 자꾸만 닥쳐왔다.
누구나 힘든 일 하나쯤은 다 있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는 더욱더 세상과 멀어져 갔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힘든 사건들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그렇게 나를 압박해 왔다.
그럴 때마다 엄한 이름 탓을 하곤 했다.
이름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든가 봐...
개명하면 좀 나을까...?
새로 지은 이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영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제대로 지켜질 리 만무했다.
결혼을 하며 혼수로 마련한, 이름을 새긴 은수저도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그 빛을 잃어갔다.
다시 한번 큰 결심을 한 나는 호기롭게 법원으로 향했다.
아직은 신혼이던 시절,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특이한 이름이니, 당연히 받아들여지겠지.
내 이름 정도면 무난히 통과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얼마 뒤 도착한 우편물에는 기대와는 다르게 ‘개명 불허가’ 판정이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
사유는 신용불량.
그 당시 나는 가족에게 명의를 잘못 빌려준 탓에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같이 나락으로 떨어질 순 없지 않겠느냐며.
신용불량이 개명 불허 사유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는 좌절했다.
잘 알아봤더라면 기대도 안 했을 텐데.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이마저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저 슬펐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내 마음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엄한 이름 탓만 하던 못난 마음이 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싫던 그 이름이 내게서 떠나가지 못한 채로 남겨졌을 때,
묘한 안도감 같은 걸 느꼈던 것도 같다.
평생 나와 함께였던 이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이름.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이름은 차마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지탱해 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체성을 잃지 말라고.
끝까지 나답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나를 붙들어 준 내 이름 석 자가 지금은 꽤나 사랑스럽다.
+ 터무니없는 이야기 +
새로운 이름을 지으러 다시 찾았던 남영역 그 철학관.
그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던 그 티비 프로그램.
그때 처음 보았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라는 노래.
이제와 돌이켜보면, 하필 그 잠깐의 타이밍에 본 그 한 곡의 노래는,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미래의 내가 보낸 어떤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상처 입은 내 맘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중략)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이 순간의 느낌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