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남영역의 그 철학관을 다시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떠올려보면, 그날의 장면 하나가 유독 선명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거실 TV에서는 청순하고 예쁜 여학생들이 박력 있게 춤을 추고 있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후훗, 나는 오늘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진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리라.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 속에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리라.
그렇게 마음속으로 행복한 다짐을 하며 다시 할아버지 앞에 앉았다.
나는 긴장감 속에 침을 꼴깍 삼켜가며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는 내 사주를 다시 훑으며 말했다.
"사주에 금(金)이 없네. 금 기운을 불어넣어 줄 한자를 넣어야겠구먼."
화려한 필체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더니 곧 세 개의 이름이 종이에 적혀 나왔다.
그중 하나가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석주.
나라 한, 주석 석, 두루 주.
중성적이면서도 단단한 울림.
정말이지 그 이름이야말로 늘 우물쭈물하던 나에게 꼭 필요한 기운 같았다.
이 이름으로 살아가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내가 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당부가 이어졌다.
"절대 두 이름을 동시에 쓰면 안 돼. 개명을 하거나, 여건이 안 되면 주변에서 자주 불러주게 해.
숟가락 같은데 이름을 새기면 더 좋아."
하핫.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긴 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대로 믿고 따랐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이름을 지어주고 늘 자랑스러워하던 아빠에게는 미안했고,
여름이라는 이름을 처음 부를 때 발음이 어색해 몇 번이고 연습했다던 엄마 생각에 가슴이 저릿했다.
스무 해가 훌쩍 넘는 동안 나를 '여름'이라 부르던 이들은 얼마나 어색했을까.
사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듣는 나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때는 믿었다.
내 운명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기만 한다면, 이 정도 어색함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과연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