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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고양이

3화 : 별님이의 세상구경(1)

by 이지아

엄마 후보를 찾겠다고 나섰지만 별님이에게 이 세상은 정말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비 오는 날, 웅덩이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토독토독 쏟아졌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우산을 펴고 골목을 달아났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물웅덩이로 달려갔다.


"첨벙!" 장화가 물을 튀기자, 웃음소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어른들은 옷이 젖을까 도망쳤지만,

아이들은 더 젖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별님도 발끝을 웅덩이에 살짝 담가 보았다. 시원한 물이 발끝을 감싸자,

왠지 모르게 발끝에서 탭댄스라도 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슴에선 이미 '빙글빙글', '첨벙첨벙' 신나는 노래가 터져 나왔다.


"비가 노래하네! 첨벙첨벙 노래!"


빗줄기 사이로 세상이 잠시 투명해졌다.

별님은 고개를 들어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자신이 다시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바쁘게 오갔고,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이 멈춰 있었다.


그때였다.

낡은 아파트 단지 모퉁이, 불빛이 잘 닿지 않는 구석에서 한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비닐봉지에서 작은 그릇을 꺼내더니, 고양이 한 마리를 불렀다.


"나비야, 밥 먹자."


별님이는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오늘의 엄마 후보.

후보자는 고양이들에게 참치캔을 열어주고, 물그릇까지 옆에 두었다.

고양이는 경계하듯 몇 발짝 물러서 있다가, 곧장 밥에 얼굴을 묻었다.

별님이는 그중 가장 도도한 기운이 넘치는 삼색 고양이 옆에 살짝 쪼그려 앉았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영혼의 자리였다.


"야옹? 맛있냐옹?"


별님이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고양이는 밥그릇에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검은 눈동자를 굴려 별님이 쪽을 지그시 응시했다.

시선을 받은 별님이는 어딘가 뜨끔했다.

마치 ‘다 아니까 더 묻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별님은 다시 한번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 언니가 '나비'라고 불렀는데,

너 이름이 나비니? 난 별님이야. 반갑다!"


그제야 고양이가 입가를 핥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별님이와 눈을 맞췄다.


고양이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눈동자가 번뜩였다..


"너, 나랑 말이 통하는구나. 재밌는 애네."


고양이의 목소리는 낮고 매끄러웠지만 어딘가 건조했다.

별님이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우와 너 내 말 들려? 와, 진짜 신기하다!"


고양이는 앞발로 얼굴을 문지르며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신기한 건 네가 더 신기하지.


대부분 애들은 내 말 못 듣거든. 근데 넌… 듣네. 이상한 애."

별님이는 해맑게 웃었다.
"그럼 친구 하자! 내 이름은 별님이야. 너 이름은 나비야?"

고양이는 잠시 별님이를 빤히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나비는 이 동네에 차고 넘치는 이름이지.

저 언니가 부르는 나비만 해도 열 마리가 넘어."

고양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더니 이내 볼멘소리를 했다.

"고양이는 이름 따윈 필요 없어. 원래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누구도 오래 기억 안 하거든."


별님이는 고양이의 태연함에 살짝 당황했다.


"에이~ 이름 없으면 불편하잖아. 부를 때 뭐라고 불러? ‘야옹아~’ 이러면 싫지?"


"... 흥, 다들 그렇게 불러."


별님이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뭔가 쓰듯 그렸다.
"그럼 너는… 노을이 어때? 예쁘지?

노을은 하늘이 제일 예쁠 때잖아. 넌 까칠해도 예쁘니까 노을이!"


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피식 웃더니 말했다
"촌스럽군.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야."

"그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노을이야!"

"그래, 네 맘대로 불러. 하지만 기억해, 이름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더 예뻐지는 건 아니야."


친구가 된 것 같은 마음에 별님이가 고양이에게 물었다.

"노을아! 혹시 너도 엄마를 찾고 있니?"

노을이가 밥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젖은 눈빛이 더 이상 젖지 않는 것처럼 건조했다.

"엄마? … 있었는지 모르겠어. 기억도 나지 않아"

"아... 그렇구나." 별님은 말끝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시야가 흔들렸다.


별님은 조금은 실망한 듯 고객을 떨궜지만, 다시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엄마후보를 찾으러 다니고 있어.

다음번에 태어날 때는 내가 원하는 엄마한테서 태어나고 싶거든~

별님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노을을 바라보았다.


"나랑 같이 갈래?"


노을이는 잠시 별님이를 빤히 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엄마후보? 음... 그거 재밌겠네,

흠... 이름도 지어줬는데 같이 가주지 뭐."


비가 잦아든 저녁.

별님이와 노을이는 젖은 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별빛화원으로 돌아왔다.
노을이에게 밥은 곧 사랑이었고, 별님에게 엄마는 곧 품이었다.
두 존재는 다름에도 서로를 향해 나란히 걸어갔다.

그날 밤, 별빛화원은 별빛 안개로 가득했다.
삼신은 은은한 빛을 두르고 나타났다.


"별님이 왔니? 오~ 우리 냥선생님도 같이 오셨네~"


삼신은 별님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눈치였다.


"별님아, 이거는 내 선물이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삼신은 별님이의 손에 옥빛 구슬을 올려주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삼신의 손끝이 잠시 공중에서 떨렸다.

별님이의 목에 걸린 별이슬초의 불빛이 아주 잠깐, 심장이 멎은 듯 흔들리며 옅어졌다.
별님은 눈치채지 못한채, 신기한 듯 구슬을 두손으로 꼭 쥐며 환하게 웃었다.


"우와, 반짝반짝 빛이 나는게 너무 예뻐"

별님이를 바라보는 삼신의 눈가에 미묘한 그림자가 스쳤다.

화원의 한쪽, 수국 한 송이가 고개를 떨구듯 시들고 있었다.

시간은 잎맥을 따라 흘러내리듯, 아이의 빛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시간은 참으로 부지런해서, 잔인하기까지 하구나..."


그녀의 시선은 이내 천천히 노을이에게로 옮겨졌다.

밤하늘의 별빛이 그 눈동자 속에서 조용히 흘렀다.


'녀석의 시간도 별님이와 닮아있구나...
그 짧은 생이, 이 아이와 얽혔으니… 그냥 두어서는 안 되지.'

별빛과 그림자가 화원의 잎사귀 위에서 잠시 겹쳤다.

마치 서로 다른 두 생이, 같은 길 위를 걷고 있는 듯이.


삼신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별빛이 부서지듯 흩날리며 노을이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노을이는 놀란 듯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 앞발에 은은히 푸른빛이 감돌았다.
마치 오래된 거울처럼, 무엇이든 속살을 비춰내는 힘.


"냥선생, 너에게도 선물을 주마."
삼신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단단했다.

노을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앞발을 슬며시 내려다보았다.
빛이 점점 사라지고, 평범한 고양이 발톱만 남았다.

"어? 이게 뭐야?"


놀란 노을이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삼신이 말을 이어갔다.

"냥선생, 앞으로 네 앞발은 진실을 비출게다.그게 무엇이든..."


"흥, 괜찮네. 원래 난 뭐든 다 빨리 알아차리지만... 뭐, 더 잘 알게 되겠지"
노을이가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순간 귀가 쫑긋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그러더니 이내 꼬리 끝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별님이가 두 팔을 벌리며 환호했다.
"노을아! 이제 우리 같이 모험하면 되겠다! 그렇지?"

노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잠깐쯤은 같이 있어주지.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노을이는 삼신의 말을 듣고 앞발을 바닥에 살짝 내려놓았다.

그리곤 별님이를 힐끗 보는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삼신은 둘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짧은 인연일지라도, 그 무게는 별처럼 오래 남으리라"


별님이의 웃음은 별빛처럼 반짝였고, 노을이의 꼬리 끝은 작은 등불처럼 흔들렸다.


이내 별빛화원에는 다시 안개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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