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라는 굴레

장남의 무게

by 이지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밤,

집으로 온 조문객들은

상주인 오빠에게 하나같이 똑같이 말했다.


"네가 아버지 대신이다."

“장남이니까, 잘해야지.”

“이제 네가 엄마한테 힘이 되어야지.”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오빠는 무언갈 꾸~욱 참는 듯하더니,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장례식 이후,

엄마는 경동시장 도라지 작업판에 앉아

도라지 칼을 잡았고, 다 벗겨진 손등 위에

황기 냄새를 묻혀 하루를 버텼다.


오빠의 월사금.

내 분홍 연필 한 자루.

쌍둥이들의 기침,


엄마는 모든 걸 자신의 하루와 바꿔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오빠에게 희망을 걸었다.


"장남"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일으켜줄 사람은

오빠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말했다.


“우리 장남만 잘되면, 나머진 괜찮아.”


쌍둥이 기침도, 내 발바닥에 난 굳은살도

모두 오빠가 잘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의 기대를 어깨에 얹고,

점점 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도 늘었고,

혹시라도 간 날이면,

학교를 마친 뒤에는 친구들과 어슬렁대며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오빠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왔다.


"만식이가 하루만 더 결석하면 유급입니다. 어머니"


엄마의 하늘이 무너졌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 맘속에 억울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공부도 안 하는 오빠는 뭐 하러 학교에 보내는 거야! 차라리 나를 보내주지, "

"내가 더 공부 잘할 수 있는데.... 백점 맞을 수 있는데...."


엄마에 대한 원망이 깊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어수룩한 노을이 내린 동네 슈퍼 앞,

다 쓰러져가는 철제 오락기 앞에 앉아 있는 오빠를 봤다.

주머니엔 돈이 없는 듯 보였고,

입가에는 껌 대신 허기를 씹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쓸쓸한 노을색만큼이나 오빠의 얼굴이 외로워 보였다.


오빠는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오빠는,

14살밖에 안된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엄마는 오빠가 잘되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오빠에게 무거운 짐이었으리라.


엄마는 그걸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다.


그래야 엄마가 사니깐.


나는 그런 오빠를 보며

질투도, 안쓰러움도 아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너는 괜찮니?”

“무섭진 않았니?”

“힘들었겠다.”


오빠도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때의 나는,

14살 중학생 남자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나 대신 학교 다니는 오빠가 미웠고, 질투 났고, 원망스러웠고,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물컹한 무언가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억울하고, 분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한 오빠처럼,

나는, 장남의 무게에 짓눌린 오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오빠와 나는 서로의 슬픔과 억울함에 갇혀있었다.


철없는 4남매가 엄마의 도라지칼을 못 봤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외면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었다.


오빠도, 나도, 그리고 쌍둥이들에게도

몹시도 시린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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